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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에 사시는 누님의 9순 잔치가 얼마 전 있었습니다. 누님을 모시고 사는 조카의 집에 가까운 가족끼리만 모여 아흔의 나이에 비교적 건강하게 생일을 맞이한 주인공을 축하하며 홀몸으로 오랜 풍상을 살아오신 누님의 옛날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섯 살 터울의 누님과 저 사이에는 공유하는 젊은 시절의 추억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제가 일본군에 입대하기 위해 고향 집을 떠나는 날 자형이 술에 취해 그 당시 유행한 '누가 제 고향 잊을 수 있으랴'라는 퍽 감상적인 일본노래를 눈물을 흘리며 부른 것입니다.
조카 집 아파트의 거실에 올 봄 출가한 손녀의 컴퓨터가 있었습니다. 문득 생각이 나, 컴퓨터로 ‘YouTube’를 이용해 그 노래를 찾아냈습니다. “얘는 별 짓을 다 하네”하며 누님은 신기해 했습니다. 그 밖에 ‘목포의 눈물’을 비롯하여 어릴 때 시골 집 유성기로 함께 자주 듣던 노래도 들었습니다.
누님은 일찍 주무시는 편이어서 새벽 3시면 잠에서 깨어 날이 밝을 때까지 화투놀이나 라디오를 들으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이럴 때 컴퓨터를 다룰 수 있으면 얼마나 유용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좀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현재 아흔인 노인들이 컴퓨터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전문직에 종사하던 분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만일 내가 5 년 더 살게 되면 그 때에도 지금과 같이 시력이나 손놀림이 컴퓨터를 다루는 데 지장이 없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누님 생일잔치에 다녀온 후 그런 생각을 가끔 해 보았습니다.
얼마 전 글방 모임에서 갑자기 제가 하루에 컴퓨터를 대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준비 없이 불쑥 “한 8시간쯤 될까요”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루 24 시간 중 8시간은 일하고, 8시간은 자고 나머지 시간은 그 밖의 용도에 사용한다는 말을 들어 왔기 때문에 옛날 직장에서 소비하던 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을 지금 컴퓨터에 쏟고 있지 않나 해서 깊은 생각 없이 그렇게 대답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곰곰 생각해 보니 크게 틀린 대답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보다 적은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긴 시간 컴퓨터와 실랑이를 벌이는 날도 많을 거라고 역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제 경우는 특수한 예입니다. 스물 두 살 때 우연한 기회로 영어를 사용하는 직장을 만나 거기서 영문타자기를 처음 보고 어린애가 새로운 장난감을 만났을 때처럼 신기해했던 그 날부터 평생을 타자기에서 컴퓨터로 옮겨가며 그들과 함께 지내왔으니 예외 중의 예외일 것입니다.
그래서 툭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저를 집사람은 무척 못마땅해 하고 있습니다. 당신 나이를 생각하라는 거지요. 저 자신 행여 컴퓨터가 고장 나거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는 곳을 여행할 때엔 상당히 불안해집니다. 옛 직장에서처럼 긴급한 메시지가 날아올 이유도 없는데 괜히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을 열어 보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컴퓨터 중독증의 초기 증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모르는 사이에 너무 몰두하는 바람에 시력이나 자세에 무리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미성년자뿐 아니라 노인도 컴퓨터 중독에 시달릴 수 있으니 이 점은 조심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컴퓨터를 두렵다거나 귀찮게 생각하는 노인들을 만나면 천당을 믿는 신자가 비신자에 대해 느끼는 기분이 이런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제 주위에는 관리직이나 전문직에 있다가 은퇴한 사람이 많지만 컴퓨터를 즐기는 사람이 오히려 적습니다. 제게 뭘 부탁해 간단히 컴퓨터에서 검색해 주면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직접 배우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답변하는 친구를 보면 좀 안타깝습니다.
노인 등의 복지문제에 유독 관심이 많은 딸아이가 있습니다. 여러 해 전, 이 아이가 어느 복지센터에서 노인들의 컴퓨터 교실을 맡아 일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컴퓨터를 배우는 노인들의 자세가 너무 진지하다고 해서 한 번 견학을 갔었습니다.
시설 제약으로 20 명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좁은 교실은 냉방이 약한 탓도 있었겠지만 보통 열기에 찬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60대 후반이 많은 수강자들은 설명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질문도 꽤 자주 했습니다.
이 강좌는 수강료가 없고, 취업을 위한 기술 습득이 목적도 아니고 노인들의 여가 선용을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서너 반을 모집해 3 개월간의 기초훈련을 거쳐 중급반으로 올라가는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딸아이에 의하면 항상 응모자가 많아 아우성이었고, 중급반을 거친 노인 중에는 그 당시 시작된 노인 컴퓨터 기능대회에 나가 입상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컴퓨터를 배워 인생의 새로운 지평선이 열렸다고 정진을 계속해 지금까지도 딸아이와 메일을 교환하며 의논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컴퓨터 강좌는 비단 여기만 아니라 서울 시내 각 구청 문화센터와 종교단체 등에서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손가락과 두뇌 운동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노인들의 컴퓨터 학습은 이런 의미에서도 권장할 만할 뿐 아니라 메일을 통한 친지와의 대화 등 여생을 풍요롭게 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편지 쓸 기회가 없는 요즘 저는 가족 카페를 이용해 하고 싶은 말이나 가족의 동정 등을 종종 전달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소식이나 사진들을 자주 올리니 가족의 화목이나 의사소통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컴퓨터 배우는 것을 망설이는 친구 분이 계시면 적극 권유하셔서 인터넷의 새로운 지평에서 여생을 즐기시도록 도와 드립시다.
필자소개
황경춘
-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 TIME 서울지국 기자
-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