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시,「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주제어 SNS 공모 이벤트 개최 - 시민과 함께 만드는 엑스포... 8월 10일부터 20일까지 주제어 공모 -
계룡시,「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주제어 SNS 공모 이벤트 개최- 시민과 함께 만드는 엑스포... 8월 10일부터 20일까지 주제어 공모 - 충남 계룡시는 오는 10일부터 20일까지 10일간 「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의 비전과 가치를 담은 주제어를 발굴하기 위한 SNS 공모 이벤트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는 2029년 10월 5일...
낭인[浪人]의 자회상 [6] 대전교도소에서 영등포 구치소로 이감되다,,, 운명의 시간들이 다가서고...
낭인[浪人]의 자화상 [6] 대전교도소에서 영등포 구치소로 .... 대전지방법원에서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죄로 징역 2년4개월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고 서울고등밥원에 항소했다. 민주헌정동지회 측에서 이택돈 의원 등 두명의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 해 주었다. 생각 이상의 중형이 선고됐지만 심정은 담담했고 나...
낭인[浪人]의 자화상 [6] 대전교도소에서 영등포 구치소로 ....

대전지방법원에서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죄로 징역 2년4개월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고 서울고등밥원에 항소했다. 민주헌정동지회 측에서 이택돈 의원 등 두명의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 해 주었다.
생각 이상의 중형이 선고됐지만 심정은 담담했고 나라의 민주회를 위한 내 소명은 아짓 끝나지 않았다는 강한 신념을 키워 나갔다.
특히 법정최후진술 이후 얼굴을 마주대하는 동료 재소자들의 나를 대하는 태도에 미세하나마 존중하는 듯한 변화가 있고 나서는 행동이나 말 거지에 신중해지려 애를 썼다.
윤보선 전 대통령 께서 두 권으로 된 논어 집주를 보내주셨다. 부인이신 공덕귀 여사께서는 당신께서 젊은날에 아껴 보았다는 맹자 해설서를 함께 보내주셔서 마음으로 뭉클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김대중 선생의 부인 이희호 여사께서도 두툼한 시서삼경 한질을 보내주셨다.
당시 약혼 중이던 아내는 논산에서 대전까지 버스도 아닌 완행열차를 타고 오가면서 아낀 여비로 "손자병법 , 순자 " 육도삼략 , 소학 대학 , 손자병법 등 고전을 여러 권 차입해 주었다.
보고 싶었던 책들이 이십여권에 이르면서 고전일반에 생소했던 나이지만 아껴주는 이들이 보내준 책들의 무심하게 보아넘길 수 없었다,
정치범으로 주목받고 있던 터여서 집범들과는 달리 교도관들의 응대가 눈에 띄게 달라진 환경이기도한 터여서 이른아침 기상하고 아침밥을 먹고나면 밤내 덮고 잤던 모포를 개어 앞에 놓고 차입된 책들을 잠자리 들 때까지 읽기에 힘썼다.
하루는 맹자를 읽다가 盡心 上 편의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 군자의 세가지 낙 이라는 내용을 펼쳤다. 한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왕이 돼서 권세를 갖는것은 그에 포함되지 않는다[이왕천하 불여존언 [而王天下不與存焉 ]는 전제를 앞에 놓고 군자의 첫째의 낙은 부모님이 나란히 생존해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번째 낙이며 [ 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낙야 [ 父母俱存 兄第無故 一樂也]
두번째 하늘을 우럴어 부끄럽지않고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것이 두번째 낙이며 [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낙야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세번째 천하 영재를 얻어 가르칠 수 있다면 그것이 세번째 낙이다, 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 [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강한 울림이 가슴에 남았다. 앞으로 내가 다시 밝은 세상에 나설수 있다면 교훈삼을 가르침으로 삼으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여튼 서울고법으로의 이감을 기다리는 1979년의 그 뜨거운 여름날을 미친듯이 독서에 매달려 지냈다,
특히 일주일에 두번 빠짐없이 면회를 오면서 갖가지 책들을 차입해 주곤 하던 약혼녀에 대한 그리움이 일렁일라치면 두툼한 성경책 페이지마다에 바늘로 구멍을 내어 한글자 한글자 새기는 것으로 그리운 정을 달래기도 했다.
그러다 1979년 9월 어느날 서울 영등포 구치소로 이감을 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오랜날 감옥생활을 통해 친분을 쌓은 동료수인들을 하나하나 찾아 석별의 정을 나눴다, 전국 각지의 동지들이 보내온 책을 비롯한 치약이며 비누 속옷 등을 나누며 석별의 정을 달래고 마침내 영등포 구치소로 이감됐다.
당시 종말로 치닫던 박정희 정권은 독재정권의 말기증상을 증명이라도 하듯 전국의 반체제 운동가들에 대한 일제 검거에 나서 나라안의 교도소들이 온통 포화상태 였고 내가 옮겨간 영등포 구치소는 정치범들로 득실거렸다
호송차량에서 내려 나는 다시 스물 한살 무렵 서대문 형무소 , 두번째 대전교도소에 이어 세번째 감옥에 던져졌다.
당시의 영등포 구치소는 그야말로 초만원이었고 나는 다시또 독방에 수감됐다. 대전교도소에 비하면 더없이 비좁고 음울하며 햇빛조차 들어오지않은 최악의 환경이었다.
말 그대로 한평도 안되는 소위 징벌방이라 불리우던 내방은 서도 한방 앉아도 한방 누워도 한방일만큼 낡고 음울했다.
그러나 이미 익히 독방생활에서의 곤고함에 익숙한 나는 "이시간을 사랑해야 한다 , 어쩔수 없는 내인생의 한순간이니,, 하는 체념으로 담담히 받아들였다.
하루 일과 중 잠깐의 운동시간을 제외하면 내일상은 그저 독서하는 것으로 하루를 엮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않든 담요를 개어 무릎앞에 개어 놓고 머리속에 들어오거나 말거니 소지한 책들을 나지막히 잃어 내는 것으로 소일했다.
1979년 10월이 왔다, 제법 감옥의 이꼴 저꼴을 다경험한 나는 나이 스물 여덟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깍지않고 버틴 그럴듯한 풍모의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 에 힘입은 때문인지 비교적 구치소내에서의 잡다한 내부충격에선 자유로웠다.
숱한 고독과 번민의 날들이 이어지면서 감방에서는 금기된 담배는 그나마 큰 위안이 되기도 했는데 교도소의 잔무를 돕는 소지라 불리우는 보조 사역자들에게 하얀 메리야스 한벌을 건네면 필터가 인달린 담배 한개피를 보급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무렵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목숨을 앗긴 10월 26일 이전 보름동안을 생전 느껴보지 못한 흉몽에 시달렸다. 일찌기 없었던 일이어서 하루종인 밤내 경험한 꿈속 풍경이 마음을 어지럽햤다.
매일같이 무덤을 배회하는 꿈을 계속 꾼것이다, 하루는 운동시간에 만난 모 종교인과의 담소를 통해 내꿈에 대한 해몽을 물었다.
제법 역학 공부에 능했던 것으로 기억 하는 그 스님은 한참동안 내 이야기를 듣더니 무릎을 탁 치더니 말했다. "김선생은 정치범이지요 ? 내가 그렇다고 말했다.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다,
좋은 징조요,, 아마 머잖아 김선생 신변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고 그게 나라의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오 했다.
나는 픽 웃고 말았지만 그땐 그저 좋은 징조라는 말에만 귀를 솔깃 햇을 뿐이다.
그러다 10.26사태가 터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심복이었던 김재규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7펀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