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동네 음악회
금요일 이야기입니다. 매주 우리 마을 ‘동네 음악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음악회를 준비하는 구청 측이나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들에겐 섭섭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음악회를 찾는 마을 사람들 행색으로 보아선 영락없는 ‘동네 음악회’입니다.
식구들과 막 저녁식사를 끝냈을 시각,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 손목을 잡고 구민회관을 찾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눈에 띱니다. 가벼운 점퍼나 스웨터 등 거실에서 TV 볼 때 입음직한 가장 편안한 옷차림들입니다.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는 한 악장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으레 객석에서 합창하듯 헛기침이 터져 나옵니다. 독창회 때도 무대 위 가수는 조용히 숨을 고르는데 청중들은 앞 다투어 목청을 가다듬습니다. 신기하고도 의아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기십만 원짜리 티켓을 사서 휘황한 연주장에 들어가면서부터 그 수준에 걸맞은 복장과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짓누르다 보니 긴장이 지나쳐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동네 음악회’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우선 입장료가 없습니다. 넥타이로 목을 조를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에서 늘 못마땅해 하던 헛기침도, 목청 가다듬는 소리도 들릴 리가 없습니다. 이래저래 마을 사람들에겐 정말 편안한 음악회입니다.
연주자들도 대충 여기 분위기에 감을 잡고 임하리라 짐작됩니다. 라데츠키행진곡이 연주되는 중이었습니다. 신바람 난 청중들이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칩니다. 지휘자도 객석을 향해 박수의 사인을 보냅니다.
그러다 절제 없이 마구 두들기는 박수소리에 깜짝 놀란 지휘자가 허겁지겁 객석을 향해 손을 휘젓습니다. 지휘봉을 잡은 다른 손으론 오케스트라를 지휘합니다. 재미난 광경에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청중들도 미소를 짓습니다. 다소 산만하지만 모두가 흥겨운 표정들이니 다행한 일입니다.
눈살 찌푸릴 일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연주회장으로 쓰이는 대강당 뒷문은 연주 중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아무 때나 열리곤 합니다. 제 볼일 다 보고 늦게 와도 입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줄지어 들어오는 지각 청중들로 한참 동안이나 문이 열린 채여서 바깥 로비의 조명이 무대에까지 비치기도 합니다.
간혹 느닷없이 아이들의 달리기도 벌어집니다. 객석 사이 통로를 마치 백 미터 경주라도 하듯 맨 앞줄에서 뒷문까지 달려갑니다. 잠시 후엔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뒷문이 다시 여닫기고 앞줄 제자리까지 달리기가 이어집니다. 그 부모도 이웃도 말리는 이가 없습니다. 대중식당에서 흔히 보는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어느 음악회에서건 한 곡의 연주가 끝나면 박수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 음악회’에선 지휘자가 지휘대에서 내려와 인사하고 미처 무대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박수소리는 잦아들고 맙니다. 지휘자의 뒷머리를 보면서 민망해 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납니다.
그런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때로 큰 환호와 긴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휘자는 마이크를 집어 들고 “금요일 저녁인데 어디 놀러도 안 가시고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이곳 문화수준은 대단합니다” 하며 인사치례를 합니다. ‘동네 음악회’다운 정경입니다.
30년 전쯤 일본에 출장 갔다가 그곳 마을회관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문화공연이 열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척 부러웠습니다. 우리네 형편으론 꿈같은 시절이었으니까요.
지금 우리 마을에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금요문화마당’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음악회가 열립니다. 1천석 가까운 자리가 거의 찰 정도로 호응도 좋습니다. 기왕이면 즐거운 음악으로 한 주일의 피로도 풀고, 아이들에게 남들과 함께 하는 문화공연의 예절도 가르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체육부장, 부국장, 경영기획실장과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을 역임했다. 여러 차례의 올림픽과 월드컵축구 등 세계적인 스포츠대회의 현장을 취재했고, 국제스포츠이벤트의 조직과 운영에도 참여하며 스포츠경기는 물론 스포츠마케팅과 미디어의 관계, 체육과 청소년 문제 등에 깊은 관심을 두고 이와 관련된 글들을 집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