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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사[老病死]2부
  • 뉴스관리자
  • 등록 2007-11-24 10: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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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그림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육질이 벗겨진 뼈가 앙상한 동물의 몸체가 둥둥 매달려 있거나, 야수같은 형태의 얼굴을 가진, 마치 누군가를 물어뜯을 듯한, 승냥이의 탈을 쓴 인간의 모습들을 그려낸 작품들입니다.

모든 악은 입으로부터 시작되고 입으로 표현한다 하여 입을 끔찍하게 강조하고, 부조리한 인간의 고통과 맑은 영혼의 부재를, 공포와 악몽으로 강퍅하고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함으로써 타락한 인간세상을 고발합니다.

어쩌다 박물관에서 그의 작품과 마주치면 쓱 훑어 보다 고개를 돌립니다. 오래 전 사 둔 그의 화집을 들추게 되면 천재적 작품성에 압도 당하면서도 단 한번 끝까지 모든 그림을 본 적이 없습니다. 행여 꿈에라도 나타날까 무서워 의식적으로 머리에서 지우려 노력까지 한 적도 있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어려서부터 동물에 대한 알레르기, 천식 등으로 몸이 건강치 못하였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모르핀을 맞을 정도로 병치레를 많이 하였고 무서운 아버지와 하인에게 훈육 당한, 아주 수줍음이 많은 소년시절을 지냈다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일반 사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주제가 전 작품세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암이라는 병마가 베이컨의 그림처럼 무자비하게 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생사의 벼랑까지 끝도 없이 떠밀려 갔습니다. 절체절명의 외로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그 공포의 시간들을 홀로 추슬러야 했습니다.

암 병동은 어느 병동보다 깨끗하고 친절하여 암 환자의 정서를 배려한 것이 뚜렷했습니다. 벽에 붙어 있는 해바라기 그림, 그리고 포스터를 보고 펑펑 울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You are not alone)’라고 쓰인 포스터는 암 환자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수술이 끝난 뒤에는 격주에 한 번씩 항암 주사를 맞기 위하여 암 병동으로 갔습니다. 그때마다 사형대로 가는 것같은 기분을 말로는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항암 투여가 많아지자 머리는 뭉텅 빠지기 시작하였고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 갔습니다. 마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서 베이컨의 그림 속 주인공을 보는 듯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모습일 수가 있지? 차라리 미치자, 미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는 것을! 모든 음식조차 마치 생 뱀을 씹는 듯 했고, 구토는 계속되고 수면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혈압을 40까지 떨어뜨려 생사를 헤매고 백혈구 수치가 너무 낮아져 모든 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마지막까지 갔습니다.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두지 누가 이런 약을 발명해 이런 고통을 주는지, 원망도 했습니다.

치료가 끝나는 이듬해 봄을 기다리던 마음, 천년보다 길었습니다. 미쳐야만 견딜 수 있었던 항암제의 치료가 끝나자 방사선 치료가 또 기다립니다. 이것만 끝나면 희망이 있겠지 했는데 더 큰 태산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암 치료가 끝났으나 독성을 가진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는 암세포를 죽이면서 동시에 정상 세포까지 파괴하였습니다. 자율신경을 교란하고 장기들의 기능을 황폐화시켰으며 뼈와 관절을 망쳐 놓았습니다. 즉 항암치료의 후유증은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장애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손가락 관절들이 망가져 어떤 것도 만지거나 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신문, 책 한 장을 넘기려 해도 칼로 쑤시는 듯한 통증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문을 열 수도, 컵을 잡을 수도, 젓가락으로 밥을 먹을 수도 없어졌습니다. 단추를 1시간 걸려 채워야 하니 옷을 입고 벗을 때마다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문 밖 출입이나 생리 해결도 혼자 힘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이렇게 동물인 채로 살아야 하는가, 빨리 가 버려야지, 이건 사는 게 아니야, 어떻게 사라져 갈까, 무슨 방법이 있을까?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로키산 깊은 곳으로 떠나 버릴까, 내겐 이미 신은 먼저 죽었었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차츰 손가락은 쓸 수 있게 되었으나 다른 기관은 예전같이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밥을 정상인처럼 소화시킬 수 없고, 잠을 잘 수 없는 신경쇠약에다 떨어진 혈압은 올리기 힘들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때도 없이 아무 때고 온몸은 마음대로 아픕니다.

망가진 면역체는 기관지 천식, 화학제품 알레르기, 호흡장애까지 불러들였습니다. 이것보다 더 문제였던 것은 육신의 병으로 마음이 병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건강치 못한 기억의 천재화가 베이컨이 끔찍한 이미지를 그려내듯이 병든 몸은 영혼까지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건전한 육신 없이 건전한 정신은 결코 없다는 것을 이 참담한 병과 싸우며 배웠습니다.




전문의에서 전문의로 돌아다니며 스무 대롱의 피를 테스트하여도 알 수 없는 병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집에 있던 홍삼을 달여 먹고 싶어져 한 달쯤 계속 복용하였더니 뜻하지 않게 손가락의 통증이 감소하기 시작하여 1년여 복용 후 조심하며 손을 쓸 수가 있어졌습니다.

정상적인 활동에 위협을 주는 저혈압증은 매실엑기스를 상복하였더니 나아져 갔으며, 불면과 신경쇠약, 우울증, 위장기능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생 로얄젤리로 탁월한 효과를 보았고 혈압도 더 좋아졌습니다. 면역체를 회복하기 위하여 면역체 보강 보조제(비타민)와 스웨덴 산 상어간유(Shark Liver Oil)를 장기간 복용하였으며, 유기농법으로 기른 야채를 상복하였고, 특히 좋은 공기 마시기와 걷기 운동은 필수였습니다.

일본인 의사가 쓴 면역 증강법을 읽고 시작한 반신욕과 족욕 또한 훌륭한 건강법이었습니다. 단 아직 천식과 기관지염, 화학물질 알레르기(호흡중단)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하게 흔들리는 캐나다인 지인이 있습니다. 그는 대장암으로 대장을 잘랐으나 암세포가 간장으로 번져 간장 절제 수술도 했습니다. 간이 3분의 1밖에 없는데 이제는 폐로까지 번졌다 합니다. 그런 상황의 그는 다시 두 번째 항암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항암제의 독을 걸러내야 하는, 암세포에 잠식된 간장이 3분의 1밖에 남지 않아 재차 항암치료를 받는 것은 죽는 것과 다름없다고 충고하였습니다만 의사의 오판만 따른 그는 두 번째 항암 치료 중 발작을 일으켜 생사를 헤매고 있습니다.

작년 그의 대장암 수술 후, 간장까지 번진 초기(간 수술 전)일 때, 내 몸이 자연요법(Naturopathic)으로 좋아졌고 이제 정상에 가까운 활동을 하고 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니 간 수술도 2차 항암치료도 하지 말고 대체 의학(자연요법)으로 치료해 보라고 조언했습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한부 생명 같았습니다만 그의 부인은 너무 낙천적이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그녀의 남편을 위하여 사다 준 자연치료제도 사다 준 것만 복용시킨 후엔 스스로 구입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1년 전에 내 조언만 받아들였다 하여도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나만은 그런 무서운 병에 걸릴 리 없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건강에 지나치게 신경과민이거나 비관적인 자세도 문제이지만 건강에 대한 자만, 과신과 낙관도 문제입니다. “병은 자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처럼 작은 병을 무시하다 목숨과 바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암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이곳에서는 암환자가 투병하여 생명을 연장하면 환자가 병에 쾌유되었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환자가 힘들게 생존했노라고 서바이버(Survivor)라는 단어를 씁니다. 전쟁에서 무사히 귀환한 상이군인도,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살아 남은 사람도 그렇게 불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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