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35)의 외교부 5급 특채 논란이 불거지면서 정부의 행정고시 폐지 방안이 결국 특수층을 위한 제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장관 딸 뽑으려고 고시 없앴나”라는 등 네티즌들의 비난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12일 내놓은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2015년에는 5급 신규 공무원의 절반을 기존의 필기시험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절반은 외부 전문가 특채로 선발한다. 외부 전문가 특채는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이뤄진다. 이를테면 유 장관 딸 같은 특채 관문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셈이다.
행안부는 이른바 ‘외부 전문가 채용’ 비율을 내년에는 선발 정원의 30%를 뽑고, 단계적으로 확대해 2015년에는 50%를 채용할 계획이다.
논란의 핵심은 외부 인사 채용의 객관성·공정성이다. 외교부는 이번에 유 장관의 딸이 1차 모집에서 외국어 시험성적의 유효기간이 지나 결격 사유가 되자 응시자 전원을 탈락시키고 재모집을 통해 결국 유씨를 뽑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서류, 면접 과정에서 장관의 딸인지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밝혔으나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유 장관은 특혜 의혹에 대해 “장관의 딸이니까 오히려 더 공정하게 심사하지 않았겠느냐”라고 정반대로 다른 말을 했다.
행정고시 폐지는 추진 때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당장 내년부터 적용되는 주요 정책이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밀실에서 결정된 채 성급하게 확정됐다는 점에서 ‘깜짝 발표’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행정고시 출신인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당시 “행시 개편안은 서민 자제에게 신분 사다리를 치워버린 것으로 현대판 음서제의 부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며 “학벌, 집안 배경, 연줄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어 소수 특권층을 위한 특채로 비쳐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도 1일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부유한 귀족자제들이 시험 없이 고위공직으로 가는 이런 제도를 채택하는 것은 서민자녀들이 신분상승하는 기회를 박탈하는 반 서민정책”이라고 꼬집었다. 홍 위원의 비판 다음 날 유 장관 딸의 특혜의혹이 터지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폐지되는 고시는 행정고시 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외교통상부는 2013년부터 외무고시를 폐지하고 특수대학원인 ‘외교아카데미’를 통해 매년 50명의 외교관을 신규 충원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사법고시 또한 2017년 폐지된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행정고시 폐지를 두고 “상위 직급이 고시 출신 위주로 구성돼 있어 경쟁이 부족하고,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네티즌들은 유 장관의 행태와 행시 폐지 방침을 묶어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 굉장한 사회” “김탁구도 아니고 아빠 회사 취직하는게 이렇게 쉽나”라는 등 비난과 자조의 목소리를 터뜨리고 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개설된 ‘유명환 장관 딸 특채 비리 철저한 진상규명’ 청원에는 3일 오후 9시 현재 2900여명이 서명했다.
아이디 Nomadicvind는 트위터에 “신라 이래 수천년 전통이 있는 공개경쟁 시험제도를 폐지하려는 음서공화국”이라고 적었고 mikycho는 “이번 유장관 딸 사건은 고시 폐지와 사무관 특채가 현대판 ‘음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확인시켜준 사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joonert는 “우리 아빠도 장관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짜로 행정고시 합격과 동일한 효과를 특채로 내 줄 수 있었을 텐데…. 역시 부는 예나 지금이나 대물림이 되는 것인가 보다”라고 적었다.
buangun는 유장관이 지난 7월 베트남에서 “한나라당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 찍으면 평화라는 야당 구호에 친북성향 젊은이들이 다 넘어갔다.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라고 한 발언을 거론하며 “정작 본인이 김정일 부자처럼 세습을 할 기세. 그렇게 권력세습을 하고 싶으면 북한 가지 왜 한국에서 세습하려고 하느냐”라고 적었다.
음서(蔭敍)제도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관직생활을 했거나 나라에 공훈을 세웠을 때 그 자손을 과거에 의하지 않고 특별히 임용하는 제도다. 관리들을 선발하는 제도로 과거제도가 있었으나, 일단 관인층을 형성한 이들은 그들의 지위를 자손대대로 계승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부분적으로나마 관직을 세습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였다. 규정에는 음서제로 관직에 오른 자는 당상관 이상의 직책과 청요직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문벌의 영향력에 따라 간혹 청요직과 3정승, 2찬성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