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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3 스토리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1-13 10: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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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출발과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가 여전히 유효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새해 들어 왠지 개운치 않고 뭔가 걸려서 얹혀 있는 기분이 가시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 마음 속을 들여다 보다가 프로복서 최요삼의 죽음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성탄절인 12월 25일, 경기 막바지에 불의의 일격을 당해 뇌출혈을 일으킨 최요삼은 1월 2일 밤 뇌사 판정을 받았고 다음 날 결국 사망했습니다. 환자 6명에게 장기를 제공한 그는 5일 영결식으로 죽음을 완성하고, 재가 되어 떠나갔습니다. 1974년 생이니 새해 서른다섯 살이지만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대전료도 고작 30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들뜬 송구영신의 계절에 그와 그의 가족들은 갑자기 닥친 죽음과 싸워야 했습니다. 한 줄의 문장으로 그의 삶은 요약할 수 있지만, 한 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죽음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남겼습니다. 조금만 빨랐어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싶을 만큼 후송ㆍ응급조치 시스템은 부실했고, 장례를 둘러싼 권투계 이견도 민망했습니다. 이럴 때 쓰려고 적립한 선수 건강보호기금이 없어졌다는 말도 들렸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사랑의장기기증 운동본부에는 장기기증 의사를 밝혀온 신청자가 많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20~30명이던 하루 평균 온라인 등록자가 60~70명까지 늘어났다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내 관심은 그의 뇌사와 가족들에게 쏠려 있습니다. 의식 없이 누워 있는 동안 “이제는 (권투를) 끝내고 싶다. 맞는 게 두렵다”는 일기가 공개됐습니다. 또 그의 마지막 말이 “글러브를 풀어 달라”는 것이었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해 9월 방송인터뷰에서는 “해가 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가을에 지는 태양처럼 멋진 모습으로 물러나고 싶다,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 성취욕이다, 체중 감량의 고통은 산모의 고통과 같다, 나는 36번 아기를 낳은 셈이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리 유언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Yo3형 파이팅!” 이 눈에 띄던 미니 홈페이지와 팬클럽 사이트에는 애도의 글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왜 요삼인가? 그는 셋째 아들이고, 한자로 要三인가? 왜 요셉도, 요섭도, 요한도 아닌 요삼인지 몹시 궁금해서 알아 보았습니다. 그는 6남매 중 다섯째였고 한자는 堯森이었습니다. 요임금 요, 수풀 삼. 처음엔 堯三이었다고 합니다. 세 번 임금이 된다는 뜻입니다. 소띠 해의 새벽 1시에 태어난 그가 크게 될 인물이라고 가족과 친분 있는 분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름을 풀이하는 분이 三자 때문에 돈이 많이 나간다고 해서 2001년에 森으로 바꾸었답니다. 그의 형 영식씨는 “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이름을 풀이해 보니 요삼이가 천국으로 돌아갔다는 뜻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영혼의 세계에서 堯자가 말하는 임금님은 예수, 곧 하느님이다, 森은 木이 세 개다, 木은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교회의 성도를 말한다, 요삼이는 예수의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요삼은 종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도인 어머니와 가족들은 그를 위해 수많은 기도를 했고, 그래서 하느님이 그를 천국으로 인도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름을 그대로 두었으면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천국에 가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그 소망대로 최요삼은 분명 천국에 갔을 것입니다.

1982년에 김득구가 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레이 맨시니의 주먹에 쓰러져 4일 만에 뇌사 판정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때 미국에 갔던 김득구의 어머니 얼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최요삼의 어머니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작은 키에 동그만 어깨, 고생으로 옹맺힌 얼굴…이런 것들이 너무도 닮았습니다.

최요삼의 어머니는 “그날 아침 ‘요삼아 사랑해’ 하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냥 문 열고 나가더라, 그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불쌍하다는 말을 되뇌었습니다. 장가도 못 간 그가 제사밥이라도 얻어 먹게 하려고 가족들은 사망일을 아버지의 기일인 1월 3일로 했다고 합니다.

그의 미니 홈피에는 “형, 거기선 꼭 행복하게 살아. 사랑한다고 말 못해서 미안해. 동생 경호가”라는 글이 떠 있습니다. 형이 깨어나면 뭘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형의 욕을 듣고 싶다며 울먹였습니다. 매니저 역할을 해온 동생은 20여년 동안 들었던 욕-야, 이 개새끼야, 그 말을 다시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최요삼은 10여일 간 누워 있다가 떠났지만 나의 아버지는 2002년 11월부터 2004년 5월까지 19개월간 뇌사상태로 누워 있다 가셨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엔 하루 두 번 면회를 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지 늘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습니다.

임종하듯 면회를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나온 밤이면 누군가 붙잡고 상의하고 싶었고, 어디론가 긴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상대는 결국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옥황상제님, 그런 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도 종교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나도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사망한 것과 다름없는데도 병원 치료를 오래 하는 나에 대해서 누군가 “평소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한 말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생각이 자꾸 납니다. 최요삼과 그 가족들을 통해서 나는 요즘 내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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