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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내기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1-12 19: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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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내기


미국 땅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발을 디딘 것은 30년도 더 전입니다. 조촐한 김포공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스케일의 공항에 놀랐지만 더욱 숨막혔던 것은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나섰을 때였습니다.

자동차라고는 기껏 새나라를 타고 다닌 나로서는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차들이 씽씽거리며 달리는 넓은 고속도로(Freeway)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머리가 멍해진 상태에서도 한국의 가난이 확연히 보이던 그 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나라를 방문하든 첫 인상은 길에서 시작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길을 통해 보여지는 형태는 그 나라의 특성과 민도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 줍니다. 큰 길이든 작은 길이든 그 길에서 스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민족의 정서와 애환을 심도 있게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도로변에 서 있는 이정표의 표기가 합리적인지, 바른 자리에 놓였는지, 도로의 교차와 출입구의 흐름이 유연하고 안전한지, 집 찾기가 쉬운지에 따라 국가의 민도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러나 고속도로 혹은 일반적인 도로보다 철도의 편리함에서 나라의 국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미국 캐나다, 중국처럼 대륙이 광활한 지역은 모든 도시마다 철도 부설을 한다는 일은 어려운 역사입니다만, 오늘날 유럽이 EU로 통합되어 단합할 수 있는 것도 유럽 모든 국가의 도시들이 작은 도시까지도 철도로 쉽게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로 패스(Euro Passㆍ유럽을 여행할 수 있는 외국인용 특별 열차표) 한 장이면 온 유럽을 여행할 수 있고 가까운 일본만 해도 잘 패스(Jal Passㆍ일본 철도 특별 열차표)를 사면 일본 전역을 열차로 여행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철도의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나라입니다. 철도가 작은 지방까지 지나고 철도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는 열차역 앞의 시외버스가 정확한 시간을 맞추어 여행자를 편리하게 안내합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대도시에서 열차와 지하철이 공항까지 편리하게 승객을 모신다는 것입니다.

강원도 영월에서 속초의 설악산까지 가는 여정에서 열차는 강릉이 종점이었습니다. 강릉역에서 속초 가는 시외버스 역까지는 거리가 멀어 무거운 짐을 들고는 택시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고, 속초 시외버스 역에서 설악산까지도 버스노선이 불편해여 택시를 탔습니다. 척산 온천에서 설악산까지는 버스가 없어 택시 아니면 차를 빌려 타야만 매일 설악산 출입이 가능했습니다.

서울에서 전주로 가려면 목포행 KTX를 타고 익산에서 바꿔 타니 시간 낭비에다 불편이 컸고 지리산 온천지역에서 천은사 화엄사 노고단까지의 버스 연결이 쉽지 않아 구례읍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도 힘들고 시간 낭비인지라 아예 전주에서 자동차를 빌려 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은 이렇게 불편한 점이 많아 자동차가 없는 사람은 지방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임을 실감하였습니다. 귀경길에는 KTX를 타고 오다가 용산역에서 내려 다시 분당까지 택시로 가느라 3만원을 써야 했습니다. 시간도 40분이 걸렸습니다.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중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타고 내리는 승객이 거의 없는 광명역은 왜 만들어 그 역에 정차를 하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승객 수송을 할 수 있는 역은 서울역, 용산역, 수원역 밖에 없으니 강북의 외곽지대 거주자 (일산, 공릉)와 강남의 거주자는 어느 열차역을 선택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분당과 강남 동쪽지역의 주민들은 KTX를 타려면 광명시 아니면 용산까지 가야 합니다. KTX는 수원역을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승차 가능자가 많은 지역을 무시하고 승객 없는 지역에 정차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행정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지자체와의 갈등 소지도 무시할 수 없겠으나 철도는 백년대계의 일로 국민의 편리를 위하여 부설되어야 합니다.

인천 국제공항도 열차와 지하철이 연결되지 않아 아주 불편합니다. 수많은 노선의 버스가 서는 승차장에는 행선지표시가 다 돼 있지만 무질서하게 승ㆍ하차하는 경우가 많고 아직도 무연유를 쓰지 않는 버스들이 내뿜는 공해로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이런 공항이 세계적 여행전문지 ‘글로벌 트래블러(Global Traveler)’가 선정한 ‘2007년 세계 최고의 공항(Best Airport in the World)에 뽑혔다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처럼 작은 국가들은 자동차가 다니는 고속도로보다 열차가 다니는 철로를 작은 도시마다 연결할 수 있도록 부설하는 것이 친 환경적이며 안전성에 있어서도 뛰어나고 고유가 시대에 경제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경제적인 측면 빠른 유통과 물류 시간성만 따져서 무조건 고속도로를 내는 일은 한국의 내일을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자연을 손상하며 최단거리로만 뻗는 직선적인 길은 한국미와 한국인의 정서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것이며, 콘크리트로 범벅된 길, 파헤쳐진 자연은 수백 년이 걸려야 복원되는 생태적 고통을 국민에게 되돌려 줄 것입니다.

수도를 옮긴다는 발상과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엄청난 운하를 만든다는 선거 공약을 지키기보다는 서민들의 발인 철도를 전국 곳곳에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후대에 물려주는 큰 유산이 아닐까 합니다.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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