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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자살하지 않는다
  • 뉴스관리자
  • 등록 2007-11-12 15: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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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쓰고 있는 휴대폰은 돈 주고 산 게 아니라 2005년에 어떤 상을 받을 때 부상으로 얻은 것입니다. 기능이 숱하게 많지만, 당연히 다 알지 못하고 이용할 줄도 모릅니다.

작년에 미국 갔을 때 국제전화 때문에 불편을 겪었는데, 올해 미국 가기 전에는 우연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자동으로 국제로밍이 되는 기능을 발견하고 스스로 한심하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나는 아직 문자메시지도 보낼 줄 모릅니다. 금년 말까지 배우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불과 40여일 정도 남아서 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유자재로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이나 휴대폰 전화를 걸었을 때 내 번호만 보고 “어, 임 주필!”하고 부르는 사람들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전화번호를 일일이 저장해 놓은 그 부지런함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런데, 국제로밍을 발견할 때와 비슷하게 최근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바이오리듬 항목을 발견했습니다. 그걸 누르고 지시에 따라 생년월일을 입력하자 그날의 바이오리듬이 나왔습니다. 신체 -94, 지성 -75, 감성 +88. 그래서 이 숫자가 어떻다는 거야?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밑에 (지금까지) 살아온 날 이 2만 118일이라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살아갈 날은 얼마나 되지? 이런 의문을 갖고 단추를 더 눌렀지만 그건 나오지 않더군요.

이런 천하에 바보 같은! 휴대폰 따위가 내가 언제 죽을지, 남은 목숨이 얼마나 되는지를 어떻게 알 거라고! 그런 건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몇 살까지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됐습니다. 어려서는 ‘나는 천재인지도 몰라. 나는 아마 요절할 거야’ 이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스무 살 무렵에 미리 본 토정비결에는 천만 다행으로 스물 여섯 살이 내가 죽는 해로 나왔습니다. 요절하는 나이로는 좀 많은 것도 같지만 그 정도면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했지요.

스물 여섯 살 되는 해의 토정비결에 나온 글은 이랬습니다. ‘산 속에 집을 지으니 무덤이 분명하고…어둠 속에서 백골이 슬피 운다.’ 아아, 이건 똑 떨어지는, 죽는 운수가 아니겠습니까?

스물 여섯 살에 나는 이미 신문기자로 일하고 있었지만, 여름에 바다를 가거나 산에 갈 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늘 그 생각을 했고, 요절을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장산에 가서 자살충동을 졸업하는 것 비슷한 글을 하나 쓰고 왔습니다. 나는 결코 천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신문기자를 하면서, 사람들의 죽음을 꽤 봐왔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엉뚱하고 억울한 사고로 인한 죽음, 비상식적인 죽음, 일찍 죽은 사람들, 죽어서 뉴스가 되는 사람들, 여럿이 함께 죽은 사람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입니다.

릴케가 그의 시에서 ‘주여, 모든 이에게 그 자신만의 죽음을 주소서’하고 읊었지만, 그 자신만의 고유한 죽음을 죽는 사람, 그래서 나름대로 의미있게 삶을 마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내가 본 죽음 중에서는 20여년 전에 목격한 한 초등학교 5학년생의 죽음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그 여자아이는 강동구의 신축 아파트 공사장에서 밑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당시의 취재수첩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 나는 것은 그 아이가 아파트 복도의 하얀 벽에 까맣게 써 놓은 글씨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 아이의 죽음이 그토록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나는 지금 막 떨어짐. 떨어져 죽음.’-이것이 그 아이가 쓴 유서의 전부입니다. 그렇게 써 놓고 아직 창문도 달리지 않은 아파트의 창틀 아래로 뛰어내렸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가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낙하/추락의 장면과 함께 밑으로 떨어진 다음에 생기는 일을 정확히 그리고 있었습니다. 떨어짐, 죽음, 이렇게 ㅁ으로 끝나는 입 닫음과 함묵의 세계를 그 아이는 냉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판토마임은 ㅁ으로 끝나기 때문에 판토마임일 수 있습니다.

나는 그때 그 아이가 시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감탄 감탄했습니다. 더 살았더라면 무엇인가 멋지고 좋은 시나 소설을 썼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안타까운 기분이 컸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리고 유서를 남기는 사람도 많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몇 년 전 회사의 후배가 여름휴가 중에 갑자기 투신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휴가 전의 행적에 비추어 보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빈소에 찾아온 다른 신문의 한 간부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고인의 이야기를 할 때, 그가 아주 인상적인 말을 했습니다. “아니, 신문기자가 어떻게 자살을 하지? 나는 참 이해할 수가 없어”가 그가 여러 번 한 말입니다.

그건 무슨 뜻이었을까요? 신문기자는 워낙 성정이 모질고 독해서 자살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기자는 구경꾼이고 훈수꾼이고 냉정한 관찰자입니다.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기의 죽음을 졸업하는(졸업할 수 있는) 게 기자의 특징이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나 남 모를 고민이 있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리요마는, 자살은 역시 신문기자와 잘 어울리지 않는 일인 것 같습니다.

스물 여섯 살을 아무런 보람도 없이 넘긴 다음에 나는 ‘그러면 79세까지는 살겠군’ 하고 내 멋대로 몰년(歿年)을 책정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생각도 없어지고 그저 되도록이면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단숨에 쓰긴 했는데, 뭘 주장하는 건지 모를 이런 글을 갑자기 쓴 것은 요즘 비 내리듯 나뭇잎이 마구 떨어져 오나가나 낙엽이 너무 수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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