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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열쇠
  • 뉴스관리자
  • 등록 2007-10-30 16: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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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는 몇 개일까요. 한 개? 아니면, 열 개나 스무 개? 프란시스 치셤은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그에게 닥친 시련은 가혹할 정도였습니다.

스페인의 산모랄레스 신학교에서 있었던 타란트 신부와의 충돌은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합니다. ‘유일하고도 진실한 사도적 종교’라는 제목으로 강의하던 신부에게 치셤은 “신부님, 종파라고 하는 건 우연히 생긴 것이니까 하느님도 종파 따위를 그렇게 중요시하지는 않겠지요?”하고 말했습니다.

신부는 너무나 당황해서 “치셤, 너는 굉장한 이단자가 될 소질이 있는 것 같구나”하고 꾸짖습니다. 무자비할 만큼 자신을 단련하는 사람인 타란트 신부는 치셤에게 ‘양심의 규명을 위해’ 일기를 쓰도록 벌을 내립니다.

치셤의 소년 시절은 훨씬 더 참담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고향 마을은 신구교도 간의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신교도 어머니와 구교도 아버지 사이에서 행복하게 자라던 소년은 9살 되던 해 벌어진 양 교파 간의 패싸움에 휘말려 하룻밤 새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됩니다.

친척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안정을 되찾아가던 그는 삶의 유일한 기쁨이던 소꿉친구의 자살로 다시 실의에 빠집니다. 세상 모든 인연들이 사라진 후 치셤은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남은 생을 하느님께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사제의 길도 평탄치는 못했습니다. 신학교 졸업을 눈앞에 둔 부활절에 치셤은 무단 외출하는 사고를 일으킵니다. 4일간의 잠적에서 돌아온 그는 다만 산책을 나갔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불손한 언행을 극도로 싫어하던 타란트 신부는 옛날 형틀을 사용한 고문이 왜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치셤이 어느 비신도 여인의 집에서 밤을 지냈다고 증언하는 편지를 입수한 신부는 곧바로 치셤의 방으로 쳐들어갑니다. 마침 방은 비어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일기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신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더 큰 범죄를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어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젊은 영혼이 겪고 있는 방황과 깊은 고뇌를 확인합니다.

그 일기는 바로 자신이 쓰게 한 것이었습니다. 편지를 갈기갈기 찢은 신부는 천천히 자기 가슴을 세 번 두들기고 그 방을 나옵니다.

퇴학처분을 면한 기적에 어리벙벙해 있던 치셤에게 그날 밤 작은 소포 하나가 전달됩니다. 그 속에는 흑단에 새긴 마리아상이 들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치셤은 문득 그 걸작품을 언젠가 타란트 신부 방의 기도대 위에서 보았던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애송이 신부 치셤은 가는 곳마다 자신과는 다른 생각, 다른 방식을 고집하는 고참 신부들과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런 가톨릭의 반항아(?)에게는 해외 포교단원이 되어 미지의 세계 중국 땅으로 파견되는 것이 오히려 하늘의 은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텐진에서도 천리 떨어진 내륙의 임지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오래전 허물어진 성당의 잔해뿐이었습니다. 지방 유지의 한 사람은 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신부님은 왜 중국에 왔소? 댁의 나라에는 갱생시킬 나쁜 인간이 없단 말인가요?”

그런 상황에서 선교사업 밑천은 오직 겸손과 열성과 끝없는 봉사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새 성당을 세우고 신도도 모았습니다. 그러나 해외 포교의 실적조사를 위해 고향 친구 안섬 밀리 신부가 방문하던 날 그의 자랑스러운 성당은 홍수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페스트와의 모진 싸움, 비적들의 노략질을 견뎌내며 성당을 재건하고 학교를 세우는 동안 치셤 신부는 마마와 총탄이 남긴 흉터로 얼굴이 일그러지고 절름발이 노인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35년간 정들였던 파이탄 마을을 떠나 귀국길에 오르던 날 찬송가를 합창하고 폭죽을 터뜨리며 꽃가루를 뿌리는 수많은 신도들의 전송에 노신부는 감격해 눈물을 흘립니다.

아치볼트 크로닌이 쓴 『천국의 열쇠(The Keys of the Kingdom)』는 요즈음 우리나라의 종교인들이 꼭 다시 읽어 보았으면 하는 소설입니다. 국내에 소개된 지도 오래됐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만한 책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의학을 전공하고 영국 왕립의사협회 회원이 되기도 한 크로닌은 의사로 활동하면서도 꽤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성채』, 『하늘 끝까지』, 『북방의 별』 등 대부분의 소설들은 사회 부조리를 예리하게 비판하면서도 인간의 근원적인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천국의 열쇠』에서 크로닌은 치셤 신부의 입을 통해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여러분의 손바닥 안에 있다.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그리고 어디에 있어도 좋은 것이다”, “무신론자라 해서 모두 지옥에 간다고 할 수 없다. 지옥에는 하느님 얼굴에 침을 뱉은 자만이 가는 것”이라며 교회의 지나친 구속을 비판합니다.
종교 간 갈등에 대해서도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단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쪽 문을 택했듯이 다른 종교는 또 다른 쪽의 문을 택했을 뿐”이라고 역설합니다.

크로닌은 또한 평생 힘들고 어두운 곳만을 찾아다니며 평신부로서 사명을 다한 치셤 신부와 화려한 언행으로 밝은 곳만을 골라 다니며 주교에 이른 어릴 적 친구 안섬 밀리 신부를 대비시켜 과연 누구의 손에 진정한 천국의 열쇠가 쥐어 있을지를 생각케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일반 생활인들이 오히려 종교를 걱정해야할 판이라고 개탄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로 타 문화와 종교를 인정치 않는 오만한 선교 자세나 방법에 대한 비판이 가라앉기 무섭게 가짜학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뒤이어 같은 불교 종단 내 파벌싸움, 사찰의 경영권 다툼에 비판기사를 실은 언론과의 싸움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찰의 주지 다툼이나 개인사찰의 축재, 교회의 담임목사 세습 시비가 모두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항간에 ‘귀신 장사가 가장 남는 장사’라는 말이 나돈 지도 오래됐습니다. ‘너희 재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과 권속들의 부를 쌓기 위해 애쓰는 거짓 성직자들의 모습을 보면 ‘귀신 장사 얘기’는 더욱 실감나게 들립니다.

도심에 하늘 높이 솟는 교회 건물, 산행 길목에서 통행세를 징수하는 ‘땅 부자’ 사찰들을 보면서 이젠 엄청난 종교 재산과 성직자의 부에 대한 과세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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