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행정이란 무엇일까?
2014년 3월 19일 필자가 보령경찰서에서 근무할 때다. 새벽 3시 39분경 보령시 주교면에 사는 40세 남자가 “나는 수배자다. 나를 잡아가라.”고 112에 신고한 후 경찰관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는 집 뒤에 있는 높이 약 60m 되는 철탑에 올라가 3시간 동안 자살소동을 벌인 사건이 있었다.
날이 어두워 철탑에 올라간 사람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자세히 올려다보니 한 남자가 아무런 안전 장비도 없이 어둠 속에서 스파이더맨같이 철탑을 익숙한 솜씨로 상하좌우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설득하고 소리쳐도 내려오지 않았다. 추락이 우려되어 소방서에 연락하여 매트리스를 땅바닥에 깔아놓고 내려올 때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파출소장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전에도 3번이나 철탑에 올라가 죽는다고 소동을 벌였는데, 경찰과 소방이 다 철수해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야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인원이 철수한 척하고 주변에 숨어서 지켜봤는데 정말 경찰과 소방이 철수한 것으로 판단하고는 내려와 검거한 사건이 있었다.
파출소에서 철탑에 올라 소동을 부린 이유를 추궁하니 자신은 늙은 어머니와 단둘이 철탑 밑 오두막집에서 사는데 경제적으로 살기도 어렵고 일자리도 없는 데다가 윙윙거리는 철탑 전기 소음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어 못 견디겠다는 것이었다.
몇 번 소동을 벌인 죄로 처벌을 받았지만, 아직 벌금도 못 낸 상태였고 또 처벌해 봐야 악순환일 뿐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파출소에서는 처벌 대신 이 사람의 딱한 사정을 해결해 주기로 하였다. 보령시 관계기관에 연락하여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절차를 도와주어 매월 얼마간의 생계비를 받게 해 주었고, 보령 중부발전소 주민지원과에 연락하여 냉장고, 세제, 쌀 등 300여만 원 상당을 금품을 지원받도록 해주었다.
또 보령 소재 연세병원에 연락해주어 심리치료지원도 받게 해주었고, 보령화력발전소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만큼 발전소 일용직으로 취업하도록 알선해주는 등 관할 파출소장이 지속적으로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주었다
그 사람은 철탑 난동으로 여러 번 입건이 되어 그간 경찰에 대한 반감이 무척 컸으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자신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들어주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 주자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어느 날 박카스를 한 박스 사들고 파출소에 찾아와 다시는 철탑에 안 올라가고 열심히 살겠다고 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하고 갔다는데, 필자는 이 이후 그 남자가 철탑에 올라가 다시 자살소동을 벌였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관할 파출소 직원들이 그 사람에게 이전에 하였던 대로 법대로만 조치를 했다면 아마 그 남자는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다가 추락사했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행정을 하는데 엄정한 법 집행도 중요하지만, 시민이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는지 그 내면의 사정을 세밀히 살펴 그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능률적인 법 집행이고 좋은 행정일 것이다.
행정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행정의 수행에는 감정, 느낌, 동기, 문화적 반응 등 행정인의 행태적 요인이 삼투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행정인 한사람 한사람의 시민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리고 그것에 바탕을 둔 인권의식이야말로 좋은 행정을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좋은 행정이란 부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이 깃든 인간중심 행정이 아니겠는가?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정치란 환,과,고,독 [鰥寡孤獨/늙은 홀아비와 홀어미 부모없는 외로운 이, 자식없는 늙은이 ] 을 보듬는 데서 시작된다. 는 맹자의 말씀을 떠올리는 아침의 단상이다.
전 논산경찰서장 신주현 (호서대학교 특임교수 행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