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이 이젠 나이 마흔을 넘겼거나 접어든다, 각기 제 몫을 하며 나름의 인생을 가꾼다, 큰 아이는 영관장교로 군에 몸담고 둘째는 내노라 할 만한 기업의 해외 팀 과장으로 세계를 넘나든다,
두 녀석이 나이 너 댓살 시절 “ 의젓하되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되 비굴하지말라 ” 고 가르쳤다, 목욕탕에 데리고 가면 어김없이 뜨거운 사우나실에 함께 들어가 어려움을 견디어 내는 참을성을 기르기도 했다, 어린 아들들이 잘못하는 일이 있을라치면 벌칙으로 팔굽혀 펴기를 시키기도 했다,
가끔씩 아비를 찾는 아이들은 어린 시절 아비가 들려주던 가르침을 한시도 잊지않고 자신을 경계한다고도 했고 운동의 중요성도 잊지 않고 체력관리를 통해 자신감을 배양한다고 말한다,
큰 아이가 안겨준 손주 손녀가 할아비를 찾을 때면 어김없이 저들 아비의 어린시절 에 들려주던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사람을 인간 [人 間 ]이라 쓰는 것은 사람은 홀로 살수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울려 살아야 된다는 뜻을 풀어 어울림의 중요성을 강조 하고 “ 네가 세상을 향해 웃으면 세상도 너를 향해 웃는다 ” 며 화안애어 [和顔靄語] “ 부드러운 얼굴 아지랑이 같이 고운 희망의 말씨”로 사람을 대하라 가르쳤다,
아무리 힘들어도 원망하지 말라는 뜻의 노이불원 [勞而不怨]은 할아비가 들려주는 가르침의 단골 메뉴다, 이젠 카톡을 통해 할아비와 주고 받는 대화에서도 아이들은 할아비의 가르침을 막힘없이 되뇌이니 참 기쁘다,
하루는 며느리가 전화를 걸어왔다,
손주 선유[善庾]가 다니는 다니는 어린이집의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유치원의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손주가 친구들과 떨어진 교실 한 켠 에서 지긋이 눈을 감고 뒷짐을 진 채 서성거리는데 무슨 소린가 웅얼거리더라고 했다,
아이의 움직임이 끝나고 나서 선유에게 무언가 웅얼거리던 내용을 물으니 선유가 대답 하기를 “ 우리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내용인데 외우고 있는 중이예요 하더란다
선생님이 무슨 내용인지 말해줄래 하고 물으니 손주는 “ 의젓하되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되 비굴하지마라 ” 노이불원[勞而不怨]힘들어도 원망하지마라 ,화안애어 [和顔靄語] 부드러운 얼굴,아지랑이 같은 희망의 말씨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 라고 설명 하더라고 했다,
깜짝 놀란 선생님이 다시 지금 그 말을 친구들 앞에서 다시 해보겠느냐고 했더니 손주는 망서림이 없이 친구들 앞에서 예의 할아비의 가르침을 설명 했다고 했다,
며느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 손주 녀석이 무척 기특하단 생각이 들었다,
착한 부자 가 되라는 뜻을 담아 선유[善庾]라 이름 지어준 손주 녀석이 다시 할아비 곁을 찾을 땐 사계 할아버님 묘소에 데리고 나아가 함께 큰 절 한번 다시 올리고 싶다,
굳이 격대교육 [隔代敎育]이라 지칭하고 싶지 않으나 자식이나 손주들에 대한 인성 교육이란게 어린날부터 할아비의 품속 가르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굳게 믿는다,
그런데 손주에게 까지 “ 힘들어도 원망하지 말아라, 부드러운 얼굴 고운 말씨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스스로에 있어서는 인생의 황혼 녂에 이르도록 그를 지키지 못하니 이 아니 부끄러운가 ?
이제라도 스스로 웅얼거리며 화안애어 [和顔靄語] 부드러운 얼굴 , 아지랑이 같은 고운 말씨를 체화 [體化] 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