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답고 진지했던 인간… 선배님은 역사였습니다
ㆍ아름답고 진지했던 인간… 선배님은 역사였습니다
김근태 선배님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제가 선배님 추모하는 이런 글을 쓰고 있다니요. 너무 빠릅니다.
슬퍼요. 그냥. 웁니다. 죽음이 문득 우리 앞에 들이밀어준, 한 거대하고 아름다운 생애의 지나감을 바라보면서.
속상하고 아리지요. 국가라는 이름으로 선배님 몸에 깊숙이 상처를 남긴 물과 불의 고문 흔적들…. 그 트라우마를 안고서도 소년같이 해맑고 선량하게 웃으시던 선배님 모습이 어른거려서, 잊고 있던 폭력의 기억이 불쑥 그 흉측한 정체를 드러내어 가슴을 후려치듯 에게 합니다.
저, 여기서 역사라는 것,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선배님 당신,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며 대부이셨다는 것. 그 고문의 후유증이 이렇게 일찍 선배님 떠나보내게 한다는 것. 그런 것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솔직히 서럽습니다. 우리 이렇게밖에 살지 못한다는 게, 국가라는 공동체를 만들어놓고서 그 권력으로 우리 서로를 물어뜯고 심지어 이렇게 가혹하게 상처내고 죽여버리는 역사가 반복될 뿐이라는 게 서글프기만 합니다.
저, 사실 선배님의 민주화운동 후배도 아니지요. 나중에, 열린우리당이 기울어갈 무렵, 제가 서울시장선거에 출마할 무렵 가까이 뵈었지요. 인재근 선배님이 제 선거 후원회장도 맡아주셨지요. 어쩔 수 없나봅니다. 싫어도, 힘들어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그 역사라는 게, 저를 이렇게 선배님과 가까이 만나게 했나봅니다.
저, 사실, 선배님 말씀 자주 귓등으로 들었습니다. 목소리는 항상 맑고 부드럽고 온화하셨지요. 언제나 나라 걱정에 진지하셨고요. 흥분하는 법도 화내는 법도 없으셨지요. 저를 부르시면서 우리 어떻게 하지 하며 시국을 걱정하셨지요. 저, 힘들었습니다. 참담했고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겨울에 선배님 위독하시다는 소식에 병원으로 가면서 저 많이 착잡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뭔가 해야 할 숙제를 못하고 선생님 면담하러 가는 느낌이었어요. 선배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다시 저를 불러 우리 어떻게 하지 하는 그 말씀을 건네주시는 것 같았어요.
선배님은 한순간도 역사를 향한 겸손한 성실함과 헌신의 자세를 놓지 않으셨지요. 선배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다시 그 진지했던 고뇌를 상기시켜주셨어요. 병실에 누워 계신 선배님 손 붙잡고 기도드렸지만, 소리내어 말씀드릴 걸 그랬어요. 선배님, 걱정마세요. 잘할게요. 열심히 해볼게요. 무어든. 선배님이 사랑하신 사람들과 이 서글픈, 그러나 우리 함께 책임지고 만들어가야 하는 역사라는 것을 위해서.
김근태 선배님, 병실에서 만난 우원식 전 의원이 “세상이나 좀 나아지는 것 본 담이라야…” 하며 말을 못 잇더군요. 민주화운동세력이 정권을 잃어버린 후 증오와 분노로 변해가는 이 사회적 정서도 마음이 아프지요. 제가 이럴진대, 선배님은 어떠셨을지.
죄송합니다. 선량하고 아름답고 진지하였던 한 거룩한 생애의 인간, 마지막 가시는 그 길에 더 평화로운 세상, 더 기쁜 세상, 그걸 마음에 가득 누리게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김근태 선배님, 선배님은 역사이셨지요. 그리고 역사 앞에서 진실했고, 항상 마음이 우리 안에 계셨지요. 잊지 않겠습니다. 선배님을 기억하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라도 더 사랑하고 끌어안으며 사람다움에 부끄럽지 않게 가겠습니다.
하느님, 정녕, 하느님이 계시다면 살아서 조국의 폭력을 몸소 맞으며 아파했던 이 사람 김근태가쯔리아(세례명)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시고, 이 아름다운 한 사람의 영혼을 거두어주소서. 살아서 편히 쉬지 못했던, 세상의 고통을 몸소 짊어졌던 어린 양, 당신께서 몸소 희생으로 쓰임을 다하게 하셨던 이 아름다운 영혼을, 평안히 거두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