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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삶 새로운 일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6-07 1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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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은 끝나가는데 아직 숙제를 덜 마친 학생 때처럼 초조함과 서글픔을 느낄 때가 있어요."
얼마 전 식탁에서 아내가 한 말입니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저는 공감한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저도 한때 그렇게 고민한 적이 있었지만 이젠 그 단계는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65세 이상의 이른바 고령자 인구가 전체의 10%에 육박하는 우리 사회입니다. 노인복지 문제가 국가정책의 중요한 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노인들이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긍정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게 만드는 사회 환경의 조성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노인복지정책의 기본철학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년퇴직에 관한 뚜렷한 규정이 없는 미국계 언론사에서 기자로 눈코 뜰 사이 없이 30년 동안을 바쁘게 살아 온 뒤 저는 자원해서 역시 미국계인 다른 언론사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이때까지 큰 병 한 번 앓아 본 일 없었던 저는 어느덧 나이가 고희에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종전처럼 취재 활동을 위해 기자회견장에 가는 등 일선에서 뛰어다니는 일에 지장은 없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좀 어색한 존재가 된 저를 발견했습니다. 이때 비로소 저는 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계약직으로 전환하여 일감을 줄이는 동시에 생애 처음으로 의도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더 가지기로 했습니다.

지금의 건강과 주위의 환경이 무한으로 이대로 계속될 것 같은 착각에 취해 있던 것을 알게 된 저는 앞에 인용한 아내의 말처럼 허전하고 초조해지는 자신을 자주 발견하고 “이게 아닌데…”하고 마음을 추스를 때가 많아졌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성인현자(聖人賢者)의 경지는 물론 아니지만, 건강을 별로 걱정하지 않던 저로서는 미지의 죽음 자체에 대한 공포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건강 악화에 따르는 육체적 불편과 고통에 대한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족에게 줄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고령사회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관심과 이에 대한 논의에도 유달리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특히 제가 관심을 가진 문제로는 고령자의 치매와 자살, 그리고 급증하는 암환자 등이었습니다.

격동의 20세기가 새 천년을 맞이하는 준비로 떠들썩했던 해의 가을 어느 날, 팔순을 몇 해 뒤에 맞이하게 되는 저는 돌연 충격적인 사태에 봉착했습니다. 아내가 위암이라는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이 예기치 않았던 사태가 생활태도나 생에 대한 생각을 또 한 번 바꾸어놓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입니다. 전신 마취에 의한 8시간의 대수술과 3 주간의 입원 끝에 다행히 아내는 건강을 회복했고, 5 년 후엔 의사들이 말하는 ‘완치’ 판정도 받았습니다.

보험사에 근무하는 아내 친구의 강권에 체면을 세워 줄 최소한의 암 보험에 들어 있었던 덕택으로 다행히 큰 경제적 부담 없이 이 고비를 넘겼습니다.

우리 부부의 인생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바로 이때 머릿 속에서가 아니고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왜 이런 어려움을"이라는 비탄보다 이 시련을 이겨내게 도와 준 모든 친지와 이웃들에게 빚 갚는 자세로, 얼마가 남아 있는지 모를 여생을 그저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자고 결심한 것입니다.

돈 벌이에는 관심이 적은 직업에 평생을 바쳤기 때문에 저는 큰 재물은 만들지 못했지만 의식주에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닌 게 다행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경제적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없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종교활동에 몰두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제가 관여하고 있는 민간 봉사단체에서 힘 닿는 대로 노력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제안하여 1970년대 후반에 세계 각지에서 활동을 시작한 ‘The Friendship Force’라는 국제 민간 우정의 모임이 1978년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이에 관심을 가졌던 저는 1982년에 적극 가담했습니다.

군사독재에서 민주사회로 변천하는 격동의 국내 정세에 휩쓸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30여 가족의 동지들이 따로 모여 조그마한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매년 한 차례씩 외국 클럽을 초청하고 우리도 상대방을 방문하여 한 주일 동안 민박을 하며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우정을 쌓는 게 우리 모임의 가장 중요한 활동입니다.
다음 주에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의 시골 도시 야마가타(山形)를 방문하고 가을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혈맹국가 터키에서 오는 손님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금년 여든 다섯 살인 제가 최고령 회원입니다.

그러나 매년 외국 친구가 불어나고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외국인이 늘어난다는 데 즐거움을 느끼며 우리 부부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이 운동에 몸을 바쳐 우리사회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사고의 긍정적 전환이란 간단합니다. 뭐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나의 여명을 5년이라 가정한다면, “아직도 5년, 날짜로 따지면 1,800여 일이란 시간이 내게 남아 있다. 이것은 일제 하의 질식할 것 같았던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인생의 거의 10분의1에 해당하는 귀중한 시간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속 없는 공상이라고 웃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야 내일도 기약할 수 없는 게 이승이지요. 한 달 후에 암 선고를 받을지 내일 당장 교통사고를 당할지 누가 압니까. 그러나 그걸 걱정만 한들 무슨 소득이 있겠습니까. 살아 있는 바로 이 순간순간을 어떻게 뜻 있게 사느냐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저 나름의 긍정적 생활입니다.

천주교에서는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오름회’라는 새로운 노인운동을 전개 중이고, 일본의 말기 암환자를 위한 이른바 호스피스운동의 선구자인 96세의 현역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박사는 75세 이상을 대상으로 ‘신노인운동(新老人運動)’을 몇 해 전 시작하여, 작년에는 우리나라에도 와서 지부를 결성했습니다.

60세 이상 인구계층의 자살률이 2001년에서 2006년 사이에 약 2.5배 급증했다는 우려할 통계도 있는 우리사회는 노인자원 개발과 노인층의 긍정적 사회참여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를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 TIME 서울지국 기자
-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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