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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씨가 옛 영화 '장마'포스터를 들고 설명을 하고 있다.
나는 예전에 그 분을 뵙지 못했다. 다만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말로만 들었던, 지금은 전설이 돼 버린 공주 주먹계의 살아 있는 전설 ‘홍도’씨를 지난 1월 19일 만났다.
사람들이 ‘홍도’라고 말해서 기자는 그 분의 본명이 ‘홍도’인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분의 본명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본명은 밝히지 않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그분은 이제 서울에서 ‘홍도’가 아닌, 본명으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어 혹시 누가 되지 않을 까 싶어서다.
1996년 당시 최범수 공주시청 공보담당관은 야심찬 꿈을 꿨다. 도청환청에 대한 꿈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공주 옛 모습’이라는 사진집을 냈다. 1900년부터 1950년까지의 공주의 옛 모습을 담은 이 사진집에는 유독 눈에 띄는 사진이 있다.
공주시민들이 도청이전반대시위를 하던 중 구속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면.
바로 1931년 대전으로의 도청이전을 반대하며 벌이던 시위농성 사진이다. 1931년 3월 13일 충청남도평의회(지금의 도의회)는 총독부의 충남도청 대전 이전 결정사항을 인준할 계획이었다.
이를 알게 된 공주시민들은 3월 11일부터 13일까지 횃불시위와 투석전을 벌이는 등 도청이전을 반대하는 시위를 극렬하게 진행했다. 이때 시위 군중을 진압하기 위해 일본경찰 300여명을 동원, 시위 가담자 50여명을 구속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위로 구속된 50여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낸 후 주민들이 도청 앞에서 석방농성을 하는 장면이 찍힌 이 한 장의 사진이 기자를 얼마나 감동시켰는지 모른다.
그래도 도청은 이전이 됐지만, 우리의 조상들이 일제의 지배를 받던 시대 하에서도 당당하게 도청이전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은 충격이자, 감동이었다.
멀쩡한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 아래서도 찍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빼앗긴 도청. 도청을 생각할 때 마다 울분이 뻗친다.
최범수 당시 공보담당관은 도청환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청의 소재지였던 공주의 옛 모습을 담아 사진전을 펼치고, 사진집을 냈지만, 허사였다. 당시 최범수 공보담당관은 열띤 표정으로 도청이전 반대시위 사진설명을 했지만, 당시 도지사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왜 일까?
‘공주 옛 모습’에 실린 사진은 ‘홍도’씨 소유의 사진이다. 자칫 묻혀버릴 뻔 했던 옛 공주역사의 파편들이 그의 손 덕분에 살아났다.
누군가의, 어딘가의 역사를 찾고, 보존하고자하려는 것. 이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 주는 현재에 사는 사람들의 몫인가 싶어 다시 공주의 옛 모습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게 그를 찾게 된 동기였다.
서울 창신동에서 만난 그는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젊었다. 목소리에 힘이 있었고, 눈이 살아 있었다. 젊은 날의 그를 보지는 못했지만, 짐작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와 함께 하는 몇 시간동안 공주의 옛 모습과, 박찬 전 국회의원 등 정치인, 현재 공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무수한 뒷이야기들이 거침없이 툭툭 튀어 나왔다. 당시의 상황을 분석해 가며 밝히는 공주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야사’아닌 ‘야사’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지금 공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 중의 하나로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 분들을 다시 보게 됐다. 뛰어난 기억력이었다.
그는 건달생활을 하면서도 배우고자 노력했다. 어려서부터 형님이 보던 책을 많이 읽었다. 형님은 지금 이북에 있으며, 당시 사회주의사상에 심취했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형님이 보던 책을 통해 만난 환상적인 사회주의의 실체를 그가 보게 된 것은 남북이산가족면회 때였다. 꿈에 그리던 가족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오직 김일성 수령 찬양만 늘어놓는 것을 보고는 사회주의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서라벌 예술대학을 다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쩐지 영화배우, 감독, 문학가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전공이 아니면 쉽게 알 수 없을 근대문학 책이나 잡지 등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한자를 막힘없이 읽어내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그러나 그가 나름대로 이렇게 학업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배우고자 했다는 사실은 공주사람들은 알지 못한다고 한다. 공주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의 주먹뿐이라는 점을 본인도 아쉬워했다.
그는 지금 서울에서 골동품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자칫 묻혀버릴 뻔 했던 우리 공주의 조상들이 벌인 항거가 그가 지닌 사진으로 밝혀졌지만, 그 덕분에(?) 그는 빛바랜 원본사진을 갖게 됐다.
그의 입을 통해 현재 공주에 살고 있는, 지금은 고인이 된 인물들의 뒷이야기와 정치적인 사건들의 전모, 공주의 옛 모습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그를 다시 공주에 초청, 공주의 옛 모습을 자료와 함께 보고 듣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공주특급뉴스/충남인터넷뉴스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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