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 송익필 친필 편액도 떨어져 뒹굴고 .부랑자 소행인듯 임이정 안 마루엔 방화 후 불끈 흔적 .오르는 조붓한 길은 쓰레기 널려있어 주민들 주변 정비 시급 주장
조선조 인조4년[1626년]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선생이 후학들을 위해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강경읍 황산리에 소재한 유형문화재 67호 임리정[臨履亭] 이 당국의 관리소홀로 방치되고 있어 특단의 관리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2월 21일 굿모닝논산 취재진이 주민들의 제보에 따라 둘러본 임리정은 목조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잠금장치가 뜯겨진채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내보이고 있었고 강학 장소로 쓰이던 마루바닥은 부랑아들의 소행인듯 방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더욱 조선조 중종조의 명필로 알려진 구봉 송익필 선생의 친필로 보이는 편액 등이 떨어져 내린채 나뒹굴고 있어 주민들은 지금처럼 방치할 경우 도난의 우려와 함께 누군가 다시 방화를 시도할 경우 화재로 인한 소실위험이 크다며 시급한 보존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임리정으로 오르는 좁은 오르막길 옆에는 인근주민들이 내다버린 생활 쓰레기들이 널려있고 주변 정비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않아 유서깊은 유교유적을 찾는 관광객 및 시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고 한 주민은 말하기도 했다.
원래 황산정이라 했던 것을 시경[詩經]의"戰戰兢兢.如臨深淵 如履薄氷"[전전긍긍여임심연여이박빙]두려워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한듯하고 얇은 얼음밟듯하라,는 뜻에서 명명한 임리정에서 동북쪽으로 150미터 떨어진 곳에는 우암 송시열선생이 스승 사계김장생과 가까이있고싶은 바람으로 건립했다는 팔괘정[八卦亭]이 수백년이 흐른 지금도 애제자의 스승을 경모하는 마음을 드러내듯 임리정을 바라보며 우뚝 서있고 특히 팔괘정 뒷편의 암벽에는 우암송시열의 글씨로 알려진 '청초안;靑草岸];과 몽괘벽;夢掛壁의 여섯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임리정과 팔괘정에서 내려오다보면 조선조의 조광조 ,이황,이이,성혼,김장생,송시열여섯분의 위패를 모셔서 육현서원[六賢書院]으로도 불리워 지고있는 죽림서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애초에 인조 임금때에 세워진 이 서원은 창건 당시 황산서원이라 칭해지던것을 현종임금 5년 죽림서원으로 사액된 유서깊은 서원이기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