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다..자녀들과 함께 손 맞잡고 어디론가 나들이가는 젊은 부부들의 모습이 부럽다..
문득 내 어린날 철부지 여섯살 시절 .기억의 한조각이 빙그레한 웃음을 자아낸다. 양촌면 신흥리 .. 그 시절의 필자는 방앗간집 둘째 손자소리를 듣고 자랐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님 께서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당시로서는 제법 부유한 살림형편이었던 집에서 태어난 필자는 방앗간에서 일을 거드는 일꾼 아저씨들로부터 "되련님" 으로 불리우며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아른거리며 떠오른다.
정확히 52년전 봄 어느날 . 여섯살이던 나는 여늬날처럼 두어마장 떨어진 큰집부터 들러 집안어른들에게 아침인사를 하고 집에 들어서니 부억에서 새어나오는 맛진 냄새에 코를 쫑긋했다
가만히 부억을 들여다봤다. 넓다란 부억엔 어머님 과 할머니.그리고 나보다 두살위인 막내 고모까지 나와서 부산을 떨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계란부침에 부침게며 쇠고기 장조림도 눈에 들어왔다.
무슨날이지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아침상에 오를 맛있는 먹을거리에 들뜬 마음으로 큰 방으로 들어가 할아버지 옆에 앉아 아침상을 기다렸다.
어머니와 고모가 마주 들고 들어온 아침상. 이게 웬일인가.. 부억에서 봤던 그 맛있는 반찬은 한가지도 상에 오른게 없이 여늬때와 같은 반찬이다.
갑자기 심통이 난 나는 할머니에게 대들었다."할머니 아까 그거..계란부침 왜 없어요? 그 당시만 해도 귀하기만 했던 계란 ..아마 제일 먹고싶은게 계란부침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무슨생각을 하셨는지 빙긋 웃으시며 "응" 그거 늬 고모 소풍가는 도시락이란다. 여섯살 철부지가 소풍이뭔지 알턱이 없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너도 내 후년이면 학교 들어가 소풍가면 만들어 줄거야..하신다. 말 인즉 나보다 두살 위인 막내 고모가 반곡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가는 소풍길의 점심도시락 이라는 말이다.
한번 심통이 난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에이.씨...나도 소풍갈테니까 그거 나 주세요..나도 소풍갈거야.. 억지를 부렸다. 아마 그 맛있는 반찬을 꼭 차지하고야 말겠다는 오기같은 거 였을까.. 지금 기억으로는 나도 소풍간다며 떼굴 떼굴 땅바닥을 굴렀던 기억이다.
그렇게 여섯살배기였던 내가 생래 처음의 산행길에 오른게 국사봉이었다. 얼마 힘들었던지 시골산 치고는 제법 높은 국사봉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아마 거의 죽을힘을 다해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국사봉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저 멀리 기차가 검은연기를 내뿜으며 달리고 있었고 뾰쭉한 교회건물 [지금의 제일감리교회]을 중심으로 논산시가지가 아스러히 눈에 잡혔던 기억이 아른거린다,
그날 이후 "남달리 숙성해도 학교 입학시켜도 좋겠네요" 하는 여선생님 말 한마디에 여섯살배기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말았다.
그런 어린날의 추억이 깃든 국사봉 을 향해 산길을 접어드니 남다른 감회가 마음을 적신다, 어머님이 그립고 할머니도 보고싶고 지금은 서울에 사는 막내고모도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진다,
반곡초등학교 뒷산 선영 부근에 차를 멈추고 울창한 참나무 숲을 건너 소나무 길을 따라 걷다보니 정상을 향하는 가파른 등산로가 눈에 들어온다.
연초록에서 짙푸른 녹색으로 무성해지는 숲길을 따라 걸어오르는데 그때 내가 오르던 길이 이길이었을까.. 세월의 저편에 감춰진 기억의 편린하나 되살리려 애를 쓰는데 갑자기 숲에서 튀어오르는 까투리 한마리"꺼엉" 긴 울음 한소리를 토해낸다.
참 좋다, 아무도 없어서 더욱 좋다. 이마에 송글 송글 땀이 배어나온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국사봉 이정표가 눈에 띈다, 모촌리와 산직리로 갈라서는 길에 다다르니 어디로 갈까,, 모두 미지의 숲길인데.. 아무래도 낮선길은 마뜩치 않다.
국사봉에 오르기로 작정을 했다. 한참을 오르는데 경사진 가파른 산길엔 다행스럽게도 등산객을 위한 배려인듯 몸을 의지할 밧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갈증이 난다. 물한병 갖고 오지못한 스스로의 불성찰이 밉다, 오랜만의 산행이라서인가 너무 힘이든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은 청춘 . 아직은 이십대라며 잔뜩 곧추세우던 오기가 움추려든다, 담배 한개피 피워물었다. 몸에 안좋거나 말거나 "후우"길게 내뿜는 담배연기 속에 세상사 근심걱정 다 날려보내듯 후련해진다. 갈증이 더 심해졌다. 아무리 두리번 거려도 산계곡에 흔히 있을법한 물 한웅큼이 없다, 지난해 벌곡면 만목리 숲을 찾았을때 배고픔을 못참고 보리이삭을 입에 털어넣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여기는 높다란 국사봉 8부능선쯤 보리밭이 있을까닭이 없다. 문득 눈에 띄는 칡덩굴 새순을 따 입에 담고 우물거렸다.
다시 산감나무 여린 새순을 따서 우물거려봤다,. 그저 씹을 만하다. 아직은 꽃을 못피운 아카시아 잎을 따 씹어보니 ..토끼가 이 맛을 즐기는 걸까.. 그저 삼킬만 했다. 다시또 걸음을 일으켜 걸어오른다. 정말 힘이 들었다. 두걸음 가다 털썩 주저앉고 ..또 다시오르고.. 0.5km남았다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내려갈까 말까 망서렸다.
아마 가끔 산행길을 함께하는 아내가 옆에 있었다면 이런 내 주저스런 모습을 뭐라 말했을까... 내나이 여섯살 시절에 올랐던 산길을 다시 못 오를까 보냐는 오기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윽고 국사봉 정상에 이르렀다.
망서리고 .주저앉고. 아마 노둔[?]한 필자의 산 오르는 모습을 누가봤다면 "깔깔"대며 박장대소 했을법 할 만큼 힘든 정상 탈환에 다름아니다.
아쉽게도 시야가 뿌연게 멀리로 논산시가지의 모습이 어슴푸레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바로 아래 이듯 탑정저수지로 향하는 강줄기의 모습과 함께 그 잘생긴 탑정지도 희뿌연 모습이지만 한눈에 들어온다.
황룡재에서 바라다 본 모습이나 다름없다, 국사봉 정상이 황룡재 정상 높이 쯤이라도 되는걸까.. 얼마전 논산시가 설치한 황산정[黃山亭] 이란 정자에 올라 바라보니 시끌 벅적한 논산 저자거리가 모두 내 발밑이다, 만난[?]을 이기고 잘 올라왔다 싶다,
갑자기 오십이년전 고추내놓고 멀리 기차가 긴 굉음 새까만 연기 내뿜으며 달리는 벌판 향해 오줌줄기 내갈기던 자리가 어딘가 ..궁금해진다,,, 이리저리 희믜한 그날들 추억의 한조각 더듬어보지만 ,, 어딘지 찾기어렵다.
서산 산자락에 걸린 붉은 저녁해가 어서 내려가라 재촉하듯 서산머리를 파고든다 아직은 풋정의 설익은 산길 .해지고 길 잃으면 어쩌나 작은 공포 한웅큼이 뇌리를 파고든다. 다행히 아직은 해넘이까진 꽤 시간이 남아보인다.
오를때는 힘들었거니 내려가는길은 쉽겠지 했더니 가파른 길 내리는 걸음이 오른길 못지 않게 힘이 든다,
문득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 누가뭐래도 솔직담백했고 이 사회의 투명성 제고에는 일익했다는 평가를 주고싶은 그가 권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