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산 1경 자랑 무색, 입구 일주문이어 사대천왕상 모신 천왕문까지 파손된지붕 방치, 천막 포장씌운채 1년넘게 꼴볼견 드러내 관광객 시민들 논산시 문화재 관리 허술에 비난 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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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의 대표적 사찰이며 논산시가 논산8경중 제1경으로 자랑하는 관촉사의 입구 일주문과 사대천왕상을 모신 천왕문 의 지붕이 파손돼 비가 새는등 보수가 시급한데도 논산시와 관촉사가 이를 방치 동 건조물의 지붕을 천막으로 덮어씌운채 1년이 넘게 방치하고 있어 관촉사를 찾는 시민 과 관광객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8월 15일 관촉사에서 개최된 산사음악회에 참석한 한 시민은 일주문과 천왕문은 건립 연대가 몆년되지않은 건조물로 보수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텐데도 불구하고 1년넘게 천막 포장으로 덮어씌운채 볼성사나운 모습을 방치하고 있는것은 관촉사와 논산시 담당자들의 인식에 문제가 있는것 아니냐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 보였다,
자신을 인천에 사는 불자라고 소개한 윤모[여/43]씨도 은진미륵불이 있는 관촉사를 20년전부터 매년즐겨 찾고 있으나 관촉사가 언제부턴가 절집의 풍경소리 울려퍼지던 울창한 수목속의 아름다운 모습은 간데 없고 시멘트 건물들이 들어선것도 아쉬운데 주차장인근 황폐한 상가의 모습이며 일주문 과 천왕문의 일그러진 모습들을 대할때마다 속이 상한다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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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촉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968년(광종 19) 혜명(慧明)에 의해 창건될 때 조성된 석조미륵상이 발산하는 빛을 좇아 중국에서 명승(名僧) 지안(智眼)이 와 예배했다고 하여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법당은 1386년(우왕 12) 건립해 1581년(선조 14)과 1674년(현종 15)에 중수했으며 1735년(영조 11) 다시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관음전·삼성각(三聖閣)·사명각(四溟閣)·해탈문·현충각 등의 당우가 남아 있으며, 석조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석등(보물 제232호)을 비롯해 사리탑·연화배례석·사적비 등이 있다.
관촉사석조보살입상
관촉사 /관촉사석조보살입상, 보물 제218호, 높이 ...
관촉사에 있는 고려 초기의 석조보살입상. 보물 제218호. 높이 18.2m. 거불(巨佛)로 예로부터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 널리 알려진 불상이다.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 권18 은진조와 1744년(영조 20)에 세워진 사적비(寺蹟碑)를 보아 광종연간(950~975)에 승려 혜명이 조성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이 상의 특징은 우선 크기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으로 불상예배의 경외심을 돋우어주는 신앙적인 효과가 크다. 이러한 위압감은 얼굴과 손이 신체의 다른 부분에 비해 크게 표현되어 그 효과가 더욱 강조되었다.
상의 크기에 비해 불신(佛身)의 표현은 소홀하여 어깨가 좁고 가슴이나 허리의 구분이 별로 없는 원통형이다. 천의(天衣)의 표현이나 옷주름도 매우 단순하다.
이마 위에 늘어진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나 두 귀의 가운데로 걸쳐 있는 보발(寶髮)의 표현, 허리 밑으로 늘어진 앞치마처럼 생긴 둥근 옷자락의 표현 등은 고려초 보살상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들이다.
이러한 특징은 강릉 신복사지석조비로자나불상(神福寺址石造毘盧遮那佛像)이나 연산의 개태사석조삼존불(開泰寺石造三尊佛)의 협시보살상과 같은 고려 초기의 불상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관촉사 불상은 보다 도식화된 면을 보여준다
. 높은 원통형의 관(아마도 금속관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없어짐) 위에 다시 사각형의 이중 보개(寶蓋)를 얹고 있는 것이라든지 연화가지를 들고 있는 수인(手印) 등은 도상(圖像)면에서도 매우 특이한 요소이다.
보개는 중국의 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요소로, 아마도 상을 보호한다는 의미 또는 상의 위용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독특한 모습의 보살상은 이후 고려에서 유행하여 비슷한 상이 여럿 조성되었는데, 그중에 부여 대조사(大鳥寺)의 석조보살입상이 대표적이다. 백호(白毫)를 수리할 때 발견된 묵기(墨記)에 "正德十六年辛巳四月十五日"이라고 적혀 있어 조성시기의 파악에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