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도읍지로 결정해서 왕궁터를 닦던 흔적으로 남겨진 주초석 [柱礎石]을 계룡시의 대표적 볼거리인 계룡시 9景으로 지정해 놓고도 115개의 주초석 더미가 군부대 안에 위치하고 있어 계룡시민은 물론 일반 국민에게도 개방하지 못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채 전전긍긍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계룡시는 연접한 논산시에서 분리 시로승격된 후 20여년동안 간단없이 이를 영외로 옮겨 사적공원 조성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오고 있으나 이를 관리하는 군 관련기관에서 이를 불허하고 있다는 것

계룡시는 시는 이와 관련 군 관련 기관과 지리한 협의끝에 15명이상의 견학단을 구성 계룡시에 주초석 관람을 신청하면 이를 군 당국이 심의 허가를 얻어야만 관람이 가능하고 그나마 주초석 을 배경으로 일체의 사진 촬영이 금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동안 어렵게 주초석 관람절치를 거쳐 견학한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거기다 더해 계룡시민들 조차 그런 까다로운 관람 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주초석 견학이 불가능 한데서 계룡시민들은 물론 학계나 관광 업계에서조차 도대체 주초석 관람 제한이 군사보안 유지를 위한 어떤 필요성이 있는 것이고 계룡시가 주장하는 것 처럼 영외 반출을 불허하는 합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비난 여론으로 비화 되고 있다,
주초석 영외이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이 무성해지자 시민 일각에서는 논산시장을 역임하고 국회의원에 당선된 황명선 민주당 최고위원이 국회 국방위원회에 소속된 점을 들어 황명선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서 계룡시민들의 바람인 주초석의 영외반출 및 사적공원 조성에 힘을 보태 줄것을 건의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주초석과 관련한 기록에 의하면 조선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이후 왕기가 쇠한 개경을 대신할 새도읍을 물색할 즈음 당시 풍수지리에 일가견이 있는 왕사 무학 대사가 새도읍지로 계룡이 금계포란형의 천하명당지지 임을 들어 강력히 계룡천도를 주장 했고 이에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7번씩이나 계룡시 지역을 방문 한끝에 천도를 결정 하고 새로운 왕궁터를 닦던 중 당시 측근 신하이던 하륜이 "명당지지임에는 분명하나 물길이 박해 도읍지로서는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 하고 나서자 " 그 말에 수긍 결국 1년여의 천도 이전 작업이 중단됐고 그이후 계룡시 부남리 등 여기저기에 왕궁터 등을 닦던 주초석 석재를 모아 놓은 것이 현재의 주초석[ 群] 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