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8일 조선일보를 비롯한 도하 각 신문은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에 이은 긴급조치의 해제와 함께 감옥에서 풀려나는 민주인사들의 모습을 1면 톱으로 실었다.
당시 스물일곱 살이던 필자도 12월 7일 밤 자정 무렵 . 구치돼 있던 영등포 구치소에서 석방됐다. 석방이 결정되기 전 보름가까이 함께 있던 성유보[전 한겨레신문 편집위원장] 송좌빈 [대전지역 민주화운동의 대부] 씨 등과 함께였다.
그날도 오늘처럼 눈보라가 몰아쳤고 한겨울 찬바람은 견디기 어려운 한기로 온몸을 파고들었다. 필자가 감옥에 끌려간 건 오늘에는 상상도 못할 죄목이다.
이름해 대통령 긴급조치 9호. 그 당시는 서슬 퍼런 박정희의 압제가 긴급조치 라는 이름으로 극성을 부리던 때. 그 누구도 박 정권의 정치에 대해 비판하지 못했다. 그 누구라도 독재 종식을 말하고 박통의 정치가 잘못한다고만 하면 어김없이 철창으로 끌려가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젊은이들이라면 이해가 안 되는 암울한 시절이었다.
그때 필자는 김대중 선생의 민주화 운동대열에 합류했다. 독재가 계속되면 결국 나라도 망치고 국민도 망치고 역사도 망친다는 나름의 신념이 있어서였다.
김대중 선생을 중심으로 한 소위 민주헌정동지회는 독재종식을 위해서는 민주화 세력의 전국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전국 적인 조직을 확대해 나가면서 필자는 중앙 집행부로부터 민주헌정동지회 논산군 조직책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그해 5월 필자의 일 거수 일 투족을 감시하던 경찰의 미행에 걸려들어 검거되면서 당시 필자가 접촉했던 가야곡의 서래선 선배[작고] 부적면의 서주원 [작고] 노성면의 문기범 선배들은 강경경찰서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대전 중부서 유치장에 머무르면서 일주일여 동안 조사를 받은 뒤 필자는 대전교도소에 수감 됐다.
검찰로부터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죄로 자격정지 5년 징역 5년 형을 구형받은 필자는 재판정에서 최후 진술과정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 고대 희랍의 철인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 " 라는 말을 남기고 독배를 마시고 죽어 갔으나 나는 오늘 " 악법은 법이 아니다. 반드시 박정희 독재는 종식돼야한다 . 독재가 종식되지 않는 한 나는 이 감옥을 벗어날 생각이 없다 " 고 외쳤다.
최후 진술을 마치고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향해 외쳤다. "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한것 같습니다" 그때 법정을 가득 메웠던 전국에서 모여든 민주 동지들의 뜨거운 박수 소리 만 귓가에 어른거렸다. 김대중 선생의 큰 아들 김홍일 선배의 모습이 보였고 양순직 민주헌정동지회 회장[작고]의 얼굴도 보였다.
결국 자격정지 5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필자는 당시 자청해서 변호인이 돼주신 이돈명 선생 등과 상의 . 항소 했고 그해 여름 영등포 구치소로 이감됐다.
영등포 구치소는 말 그대로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전국 곳곳에서 반 유신 반독재 투쟁을 벌이던 민주인사 들과 학생들이 속속 잡혀오면서 감옥이 터져나갈 지경이 되자 유신당국은 할 수없이 민주인사들은 정치범으로 분류 소위 징벌방이라는 앉아도 한방 서도 한방 누워도 한방인 좁디좁은 지옥방[?]에 던져졌다.
햇빛도 안 들어오는 징벌방에 던져진 필자는 당장이라도 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절망했고 마음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일순 마음을 고쳐먹었다. 오늘 이시간이 싫다 해서 내 인생의 연장선상에서 떼 낼 수 없다면 내가 머무르는 이 시간들조차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부인 공덕귀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부인 이희호 여사들이 차입해 준 성경책이 큰 위안이 됐다. 또 찬송가 속의 햇살이 내리는 숲속 광경이나 사슴이 냇가에서 풀을 먹는 사진 .광야에서 양떼와 함께 있는 예수님의 사진들을 떼내어 벽화처럼 벽면에 붙였다.
그리곤 아침에 일어나 소지[수인들 식사당번] 들이 던져준 콩밥 한 덩어리를 먹고 나면 이불을 개어 놓은 위로 책을 펴들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당시 약혼 한 상태이던 아내가 교통비를 아껴가면서 넣어준 이기백의 신 한국사를 비롯한 동서양 고전 들이 내가 주로 접한 책이지만 제대로 머릿속 에 들어 올 리가 없었다.
책을 보고 있어도 밖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됐고 결국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독재 세력은 박통의 종신독재를 위해 캄보디아에서처럼 박정희에 대한 이 땅의 적극적 반대자들을 몰살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들도 들려와 전율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간수부장이 내게 말했다. "김선생 면도 좀 하셔야 하겠는데요 [그들은 스물일곱의 나를 선생이라고 호칭했다] 마침 미염공이라 불리 웠던 관운장의 수염에 비교하며 쓰다듬고 하던 필자의 수염은 비교적 보기에 좋았다는 생각이지만 그들이 요구하니 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필자의 수염을 깍는다며 그들이 내 머리에 들이 민 건 수염을 깍 는 면도칼이 아닌 머리를 깍 는 기계 소위 바리깡 이었다.
순간 대로 한 필자는 바리깡을 들이대던 간수를 옆에 있던 목욕통을 들어 세차게 후려 갈겼다.
" 야 인마 ! 이게 내수염이 돼지털처럼 보이냐? 어디다 바리깡을 들이대? 감옥 안이 소란스러워지자 교도부장이라는 간부가 힘센 간수들을 대동하고 내방 앞에 섰다.
필자가 다시 말했다. 야 이놈들아 소장 놈 오라고 그래 ..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자 .. 사태의 심각성을 전해 들었는지 소장을 대신해 부소장이 왔다.
부소장에게 말했다." 여보 ! 한마디만 묻자 . 내가 느그들 눈엔 돼지로 보이나? 그리고 내가 기결수 인가 미결수 인가 말해보라 !" 그러자 부소장이 말했다." 미결수 이지요. " 필자는 “그럼 이 수염 못 깍어! 라고 내뱉었다.
그런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서야 출옥 때의 사진처럼 텁수룩한 모습으로 감옥 문을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하여튼 그 감옥 안에서 마음이 흔들릴라 치면 보던 책들을 소리 내어 낭독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좋은 고통 해소법 이란걸 깨닫기도 했다. 아내에게 참 미안했다. 잘 대해주는 간수를 시켜 소위 비들기 [몰래보내는 편지]를 띄웠다.
" 당신 손목한번도 잡아보지 않은 터 . 언제 감옥을 벗어날지 모르니 나를 잊으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용케도 내가 좋아 할 내용의 책을 골라 감옥으로 나르는 데 소홀함이 없을 뿐 변함없는 사랑과 애정을 보여 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고통 받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에 더 미안한 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10.26사태가 일어난 다음날부터 이지 싶다. 갑자기 감옥의 복도에 한명씩이던 보초가 세 명 씩 으로 늘어났고 분위기가 살벌 했다.
그러나 밖과 단절됐다고는 하나 오히려 감옥 안에서 박의 소식은 더 빨리 정확하게 전달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서 피살됐다는 이야기가 사실로 알려졌다.
건너편 미전향수들이 기거하는 감옥에서는 간간 만세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때 감옥안에서 만난 어느 역술인은 이런 이야기도 했다.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의 한문 이름풀이를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종식을 예견했다. 그 뜻풀이에 의하면 박정희 의 朴은 十에 八을 더한 木 자에 卜을 더한 합자로 집권 18년에 점을 치니 正 틀림없이 희 [熙] 己 자기의 臣 신하에게 火 불로 변을 당한다는 이름이라고도 했다.
섬뜩했지만 그럴듯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기의 친한 친구이면서 혁명동지이기도 했던 이에게 총을 맞아 불귀의 객이 되고 만 점은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11월 중순경 독방에 있던 필자에게 방을 옮긴다는 전갈과 함께 좀 넒은 방으로 안내 됐다.
방에 들어서던 순간 이미 먼저 와있던 두사람 함께 대전교도소에 수감됐던 송좌빈 선생의 모습이 보였고 준수한 선비차림의 단아한 모습인 성유보 선배였다.
박정희가 가고 없으니 곧바로 석방 될 거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석방을 앞두고 징벌방에 있던 민주인사들을 좀 났게 대접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합방조치 이지 싶었다.
감옥의 겨울은 무척 추웠고 찬바람은 뼈골까지 파고드는 고통으로 다가왔으나 감옥 문을 벗어난다는 희망이 그 견디기 어려운 시간들을 버티게 했다.
그러다 맞은 1979년 12월 7일 밤 10시가 돼서야 석방소식을 들었다. 그리곤 12시 쯤 돼서 감옥을 나섰다.
고집스레 버티며 지켜낸 수염 탓이었을까.. 구치소 문을 나서자마자 케메라 세레를 받았다.
그렇게 감옥을 벗어 난지 33년... 바로 오늘 이 시간 ... 대통령 선거를 불과 10여일 앞둔 지금 왜 그 당시 스물일곱 살 시절에 맞았던 악몽 같은 추위가 느껴지고 떠오르는지 알 수 가 없다.
그 30년 세월동안 역사는 얼마나 진전했는가..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내가 맞을 2012년 12월 20일은 어떤 세상일까를 생각해 본다. 치자들이여 ! 일찌기 공자께서 당신의 삶의 지향이라 했던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 [老者安之.朋友信之.少者懷之] 늙은이를 편안케 하고 벗들에게 믿음을 주고 어린것들에게 그리움 되는 삶! 그 한마디를 되뇌어 보는 오늘이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우리 동학의 가르침 속에 있는 사람이 바로 하늘이라는 뜻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인내천[人乃天] 그 의미를 되새겨보기를 바라는 맘이다. 사람이 바로 하늘이다.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