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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은 두번이나 결혼하였으나 모두 사별하였다. 21세에 첫째 부인 허씨와 결혼하여 아들 셋을 두었으나 27세에 사별했고, 3년 후 권씨 부인과 재혼하여 16년간 살다 사별했다. 그런데 권씨 부인은 어린시절 사화에 휘말린 집안의 참극을 직접 본 충격으로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으나 퇴계는 그런 부인과 결혼하여
지극정성으로 아내를 손님처럼 대하였다.
한번은 퇴계가 상가에 조문을 가려다 흰색 도포자락이 해진 것을 보고 그것을 꿰매달라고 하자 권씨는 흰 도포에 빨간 헝겊을 대어 기워왔다.
하지만 퇴계는 아무 말 없이 부인이 준 옷을 그냥 입고 나갔다. 사람들이 놀라
“흰 도포는 반드시 빨간 헝겊으로 기워야 하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지만 그냥 빙그레 웃었다고 한다. 퇴계가 부족한 부인을 탓하지 않고 이처럼 소중히 대하는 모습은 제자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은 제자가 퇴계에게 문안인사를 왔다가 권씨 부인을 보자
"나는 학문이나 인격, 모든 면에서 선생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내 아내는 매무새나 음식솜씨, 손님을 대하는 모습 등이 월등하게 낫지 않은가.
그런데도 나는 아내를 박대하고 있으니" 라고 반성하였다고 한다.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에도 장모를 극진히 봉양하였고, 둘째 부인 사별 후에도 장인을 극진히 모셔 효행이 높았다. 이처럼 퇴계는 처가에 대한 상념이 지극하였다.
이러한 퇴계의 마음은 손자가 장가갈 때 보낸 편지 속에 자세히 드러나 있다.
“부부는 남녀가 처음 만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이룬다. 또 한편 가장 바르게 해야 하고, 가장 조심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의 도가 부부에서 발단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예와 존경함을 잊어버리고 서로 버릇없이 호칭하여 마침내 모욕하고 거만하고 인격을 멸시해 버린다. 이런 일은 손님처럼 공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을 바르게 다스리려면 처음부터 조심해야 한다.”
퇴계는 처가향념(妻家向念)을 가정을 다스리는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치고 이를 몸소 실천하였다. 지금도 퇴계 가문에서는 아래 규범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첫째 부모에게 불효한 사람과는 대화를 나누지 마라,
둘째 처가에 향념(向念)이 없는 사람은 교제하지 마라,
셋째 아내를 쫓아낸 사람과는 사업을 같이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