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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을 찾아서
  • 뉴스관리자
  • 등록 2009-06-11 10: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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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생에 유랑하는 집시였거나 아니면 정처 없이 생존을 위해 여기저기 떠도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 일반 사람들보다는 방랑벽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얼마동안 집안에 오래 처져 있게 되면 그만 어디든지 사람이 없는 곳으로 카메라 메고 훌렁 떠나고 싶어집니다. 여기저기 홀로 돌아다니면 가라앉았던 가슴이 쭉 펴지고 아기들의 낮잠과 같은 평화가 옵니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있지만, 가고 싶은 곳을 계획하여 실행에 옮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우선순위에 들어 있는 여행지보다는 그렇지 않은 곳을 먼저 가게 되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답사할 기회가 미루어져 안타까웠던 곳, 담양 瀟灑園(소쇄원)을 찾아 만사를 제쳐두고 예향남도를 향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소쇄원을 답사하러 가는 길은 고향 가는 길만큼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대나무 숲과 오리, 닭들이 사람과 어울려 노는 소쇄원 초입에 들어서자 오랜 방황 끝에 돌아온 내 집 마당처럼 애틋한 잔잔함에 잠시 마음이 풀어집니다. 소쇄원의 정원이 시작되는 이 편과 계류의 물이 흘러내리는 저 편 사이에 새 색시 처럼 얌전하게 다리가 놓인 정원 입구에 들어서자 나는 그만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한참 멍하니 정신없이 훑어보며 다리를 사뿐히 지나 光風閣(광풍각)에 잠시 앉아 500년 전의 시대, 상상의 세계로 내 몸을 실어봅니다.

그곳은 정원이 조성되기 전부터 흘러내리고 있던 장원봉에서 흘러내리는 계류와 계곡의 바위 나무들이 고요 속에 묻혀 있습니다. 잠시 신선이 된 듯한 꿈에서 깨어나 광풍각을 뒤로 하고 霽月堂(제월당)이 있는 언덕바지 돌계단을 올라갑니다. 주변을 휘이 한바퀴 돌자 정원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우와! 하는 탄성만 자꾸 나옵니다. 이 정원을 조성한 옛주인의 취향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으며, 내 몸은 감동으로 잠간씩 전율이 흐르고 지나갑니다.

무등산 영봉까지도 감상할 수 있도록 조망의 대상에 포함, 대자연의 일부를 정원으로 탈바꿈 시켰다고 하는 소쇄원은 지형의 높낮이를 이용한 다양한 변화와, 그 높고 낮음이 마치 반음이나 반박자의 변화로 온갖 음악을 변주해 내듯 여기저기서 다른 아름다움을 수없이 드러냅니다. 거기에 빠른 변화의 화음처럼 광풍각과 제월당의 상하의 위치, 그 앞을 五曲門(오곡문)에서 시작하여 빠르게 느리게 바위 사이를 누비며 내려가는 계류는 청각과 시각의 맛을 더욱 깊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곳 소쇄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길 따라 계곡의 상류로 가는 통로를 만들어 놓은 오곡문 주변이었습니다. 특히 진달래가 무리진 애양단을 거쳐, 오곡문 옆 담장 안으로 흘러드는 계류 위로 걸친 다리와 오곡문은 한편의 시였습니다.

소쇄원에서의 소쇄는 '기운이 맑고 깨끗하고 시원하다'라는 뜻으로 이 정원을 조성한 조선 중종 시대, 양산보는 사약을 받은 조광조를 따라 내려와 이곳 고향인 담양에 정원을 조성하고 평생 은둔하며 자연에 묻혀 살게 됩니다.

혹자는 고산 윤선도가 지은 洗然亭(세연정)이 있는 부용동 정원을 조선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지만, 부용동은 수평적인 조성이어서 호탕하게 트인 전망으로 하늘 구름, 바위등, 편안하고 고요한 자연을 즐길 수는 있으나 변화가 없어 재미가 약합니다.

나의 개인적인 안목과 취향으로는, 오밀조밀하면서 탁 트이기도 하여 지형에 따라 변화가 있는 소쇄원을 조선시대의 전통 정원 가운데 가장 예술적이며 사색적인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쇄원에서 찍은 사진만으로 사진전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다양한 그림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일본의 정원이나 현란한 색채와 경물들로 치장한 중국정원의 분위기와는 다른, 소박하고 자연스러우며 기품을 지니고 있는 소쇄원은 그 당시 낙향한 선비들의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었듯 나에게도 그곳은 이상향이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가장 아름다운 조선적인 정원으로, 오직 우리 조상만이 조성할 수 있었던 고유한 문화 유산입니다.

세계에 자랑하여도 손색이 없는 이 유산을 잘 지켜 나가기 위해선 답사 방문객을 제한적 예약제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관람하다 보면 작은 수목, 돌부리 하나라도 훼손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필자소개



오마리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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