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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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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09-06-06 06: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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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학 교원 수는 2007년 통계로 7만388 명입니다. 최근 서울대 교수 1,700명 중의 일부인 124명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한다는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소속이 많다고 합니다.

선언의 계기는 노 전대통령의 투신자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전직 국가원수의 자진(自盡)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역사상 희귀한, 참으로 비통한 일이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형사 피의자 신분으로 겪었을 수모와 평생 신봉해온 가치관에 대한 좌절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야당 주장대로 ‘죽은 권력’에 대한 철퇴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없지 않습니다.

무슨 소설을 쓰듯 ‘…알려졌다’와 ‘…전해졌다’로 몇날 며칠을 이어간 신문들의 사건 수사 관련 기사도 문제였습니다. 그러니 야당이 수사당국을 피의사실 공표 죄로 고발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것은 수사가 시작된 원인입니다. 정치권력과 연관된 부패사건을 파헤쳐 법치를 확립하려는 국가기관의 형벌소추권이 ‘죽은 권력’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는 반박으로 통 크게 덮어질 사안은 아닐 겁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추상같은 단죄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일천하여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제도도 미비했죠. 노 전대통령이 공직비리수사처 설치를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나 유감스럽게 좌절되었습니다. 일본의 검찰처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사정이 추상같았다면 오늘의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요. 그러니 정권이 끝나자마자 전비(前非)를 소추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고육지책이 아닌가 합니다.

‘산 권력’도 못 다스리고 ‘죽은 권력’은 죽었기 때문에 다스리지 못한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할 법의 정신은 어디에서 살릴 수 있을까요? ‘죽은 권력’ 역시 얼마 전까지는 우리 현실에서 손대지 못할 ‘산 권력’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국선언 교수들은 나름대로의 우국충정이 있겠지만 이 나라에 정말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남한을 위협하는 북한 세습 독재 체제일 것이고 이를 못 본 척하는 남한의 일부 세력일 것입니다. 북한은 무고한 금강산 주부 관광객 박왕자 씨를 살해했으며 햇볕정책의 성과이자 남북경협의 쇼윈도라고 할 개성공단 근무자도 60여일 째 장기 구금중입니다.

지금 국민들은 핵무기를 머리 곁에 두고 불안한 잠을 자는 격입니다. 좌파정권 10년에 통산 100억 달러 상당의 대북원조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그 자금을 누가 지원했는데 지금 남북관계의 후퇴를 운운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죠.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핵무기 개발, 3대에 걸칠 세습독재체제 대한 의견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하지도 않은 4대강 대운하를 강행하려 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럼 서명 교수들 중에는 국민투표로 민의를 묻지 않고 40여 조 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토목경제의 대표격인 수도 이전에 반대한 분들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돈이라면 이 나라는 요새 화두인 ‘녹색 경제’에 성큼 다가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같은 대학교 최막중 교수나 박세일 교수 같은 분은 왜 수도 이전에 반대했는지, 특히 박 교수는 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직은 물론 국회의원직까지 왜 내던졌는지 여러분들은 고민한 적이 있었나요?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 위헌결정을 내리기 전에 여러분 지성들은 무얼 생각하셨습니까?

정치인이란 대체로 표리부동하며 주장은 늘 과장되어 있죠. 손(損)이라면 걷어차고 득이라면 달라붙죠. 지금은 스스로 운명을 달리하여 자신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야당 사람들도 불리했을 때는 공동운명체였음에도 불구하고 ‘탈 노무현’을 외쳤습니다.

입으로 민주주의자라고 해서 모두가 민주주의를 떠받드는 것도 아니고 ‘민주평화개혁세력’을 자칭한다고 해서 실제로 전부 그런 것도 아니죠. 교수들 역시 사물을 냉철히 종합적으로 판정하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지적하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해 비판하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종교건 언론이건 환경단체건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이미 권력화한 시민사회단체를 국정의 파트너로 삼으라는 요구도 망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위임도 없고 조직의 기능도 명쾌하지 않기 때문이죠.

‘언론자유’ 보장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이 광우병 쇠고기 파동에서 보여주었듯이 사실무근한 선동의 자유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권이 방송을 장악한 게 아니라 방송이 정권을 장악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기자실을 대못질한 것은 언론자유의 신장이라고 시국선언 교수들은 보았던가요?

교수들이 선언하자 ‘이제는 학생들이 답할 차례’라며 대학생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습디다. 거리로 나와 반정부 시위라도 벌이자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침체와 북한 문제로 내외가 어수선합니다.

그런데도 공무원 신분인 국립대 교수들이 소수나마 이런 시국관을 갖고 있다면 국민세금을 지원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편향되지 않은 시각이 절실합니다. 현재진행형인 사태에 참여하고 싶거든 교수라는 엉거주춤한 울타리를 칠 게 아니라 당당하게 정당 조직에라도 뛰어들어 행동하는 것이 학문과 정치, 양자 모두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봅니다.

[본란은 굿모닝논산의 사시와 같지 않을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 각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개량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 보도기사와 칼럼을 써왔다. 그는 동구권의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을 역임했으며 신문사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에서 체득한 뉴미디어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 저서로는 병인양요 시대를 그린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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