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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바래지 않는 그 가치
  • 뉴스관리자
  • 등록 2009-05-09 07: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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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창호지 너머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렸다. 지난 밤, 비바람 때문에 닫았던 창문을 열자 그림으로 그린 듯한 풍경이 보였다. 창가 가까이에 앉아, 맑게 개인 하늘을 배경 삼아 기와집과 초가집이 나무, 꽃과 자아내는 경관을 보고 있자니 한옥을 사랑한 옛 선조들의 마음을 절로 이해할 수 있었다.

선교장의 풍경을 따라 이곳 저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초가집 마당 앞에서 ‘널뛰기’나 ‘제기차기’를 하거나 한가로이 산책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체험관에서 본 풍경

한국관광공사의 ‘구석구석 전통한옥 숙박체험 이벤트’에 참가한 80여 명이 4월 25일 조선시대 고택의 미가 남아있는 사대부 집인 강릉 선교장에서 특별한 하룻밤을 보냈다.

이들은 선교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해설사로부터 고택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옥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선교장의 본채건물인 중사랑·행랑채와 부속건물인 체험관·홍예헌·초가에서 한옥 숙박 체험을 했다.


자연과 어우러진 강릉 선교장 내 정경 일부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5호인 선교장은 건물 10여 동에 총 130여 칸 건물로 작은 궁궐과 같았다.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 처음 지은 선교장은 300여년이 넘게 당시 사대부가옥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에 한국방송공사는 2000년 선교장을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했다.

선교장이란 이름은 한 때 집 앞까지 물이 들어와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곳은 하늘이 족제비 무리를 통해 점지했다는 명당터에 자리해,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안채를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중사랑, 행랑채, 사당들이 있고 큰 대문 등 12대문이 있다.

입구 가까이에는 연못 위에 활래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정원까지 갖춘 완벽한 구조를 보여준다. 옛날 활래정에서 본 풍경은, 경포호수의 경관을 바라보며 관동팔경을 유람하는 조선의 선비와 풍류들의 안식처가 됐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활래정과 연못


강릉 선교장을 통해 본 한옥의 가치
강릉 선교장의 모든 건물은 각각의 모양과 기능을 가지고 있어, 한옥의 우수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우선 겨울을 위한 온돌과 여름을 나기 위한 대청마루, 여유를 갖는 공간인 마당이라는 한옥 공간에서 옛 선조의 슬기를 엿볼 수 있다. 따뜻한 공기로 바닥을 덥히는 온돌의 제구실을 위해, 선교장의 아궁이가 통하는 바닥은 끝부분이 점점 좁아지는 등 한번 들어간 온기가 쉬이 나갈 수 없는 구조로 돼 있었다.

이와 반대로, 대청마루의 툇마루는 뚫려 있었다. 이는 통풍을 위해서다. 실내의 바닥을 지면에서 높게 지을수록 온·습도를 시원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각 방들은 마당이 보이도록 돼 있었다. 마당은 안채의 안마당, 사랑채 앞의 사랑마당, 하인들의 행랑마당, 부엌 뒤 작업공간인 고방마당, 사당 앞의 제사마당, 안채 뒤 정원인 뒷마당 등 각각 다르게 불렸다. 선교장의 마당은 각각 필요한 정도의 크기로만 있어, 사대부의 가옥이지만 허례 허식하지 않으려 했던 점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옥의 약점을 보완하는 등 합리적인 건축 설계로 인한 한옥의 우수성도 볼 수 있었다. 강원도에는 바람이 많이 불기에 선교장은 전체적으로‘ㅁ'''''''' 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었고, 불이 나더라도 전부 타버리지 않도록 집 전체가 세 부분으로 돼 있었다.

그리고 습기와 벌레가 생기는 것을 막고 세균이 번식하기 어렵게 하기 위해 ‘기단’을 활용했다. 기단은 건축물의 터를 다진 뒤 쌓은 단으로, 건물과 지면 사이에 놓인 돌을 말한다. 물에 닿으면 썩는 목조건물의 약점은, 처마를 만들어 해결했다. 처마는 직사광선도 막아주는 역할을 하여 햇빛을 반사시켜 방안을 따뜻하게 하는 기능도 했다.


손님 맞이에 사용된 건물 (시계방향 순으로- 열화당, 행랑채, 중사랑)

한옥 체험은 어땠나요
건축 방식이나 위치 등에 하나하나 이유가 있다는 점을 알고 나니 조상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옥에서 지내는 체험이 더 없이 소중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이번 체험 참가자 대부분이 체험에 대해 만족해했고 한옥의 활성화에 긍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저녁식사 후 윷놀이 가족 대항전 때 이야기를 나눈 문순하씨(63·여)는 “오늘 선교장에 와서 ‘옛 시절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구나’를 알 수 있었고, 외국인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파트 문화 대신 이런 한옥 문화가 이어졌으면 좋겠고, 한옥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이곳에 온 최주성씨(43)는 “한옥이 전통가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구조인지는 잘 몰랐는데, 이젠 알겠다”며 “오랜만에 바쁜 회사생활 속에서 벗어나 한옥에서 조용하고 마음 편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렴하게 한옥을 체험할 수 있는 곳 등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명숙씨(47·여)는“아들이 아토피 피부라 평소 집에서 자면 얼굴이 울긋불긋하고 몸이 건조해져, 자는 도중 몸이 간지럽다고 몇 번씩 일어나곤 했는데, 이곳에선 피부도 깨끗하고 편안하게 잠을 잤다”며 미소지었다.

양기룡씨(66)는 “아파트와 비교하면 불편한 감이 없지 않지만, 아파트 공기가 좋지 않은데 반해 한옥은 춥지만 공기 순환이 원활해 공기가 좋다”며 “아파트의 단점을 한옥의 장점으로 보충해 복합적인 건물을 만든다면 한옥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옥과 비슷한 곳에서 자랐다는 이은주씨(47·여)는 “한옥 구조와 형태를 배울 수 있었다는 점, 아이들에게 교육적 체험을 하게 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며 “현재 숙박까지 할 수 있는 한옥마을이 전국 5개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활성화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한옥에서 살았다는 양원재씨(42)는 “오랜만의 한옥의 하룻밤은 편안했다”며 “한옥은 가습기가 없어도 될 정도로 공기순환이 잘돼 좋다. 정년퇴직하면 한옥을 지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체험은 가족단위의 체험이라 아이들이 꽤 많았다. 아이들 대부분이 한옥을 처음 경험했는데, 반응은 각각이었다.

이소정양(13)은 “한옥하면 화장실은 재래식이고, 아궁이에 직접 불을 떼야 하는 등 불편할 것 같았는데, 실제로 와보니 깨끗하고 좋았다”며 “옛 서양식 건물보다 한옥이 더 좋다”고 말했다.

이 양은 “요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오는데, 서양식 호텔 대신 한옥같은 한국식 호텔이 생긴다면 한옥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한옥에 자부심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양예원양(13)은 “우리나라 전통집이라고 알고 있던 한옥에 직접 와보니, 생각보다 아늑했고 더 따뜻한 분위기였다”며 했고,“자연환경과 어울린 건물이어서 그런지 개미 등 벌레가 많아서 그 점은 싫다”고 했다.

최윤원군(13)과 최윤웅군(13)은 “조용해서 좋긴 하지만 귀신이 나올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면서도 “한옥과 아파트에서 고르라면 한옥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많은 참가자들은 방문이 창호지라 옆방의 소리가 들려 소음이 심했다는 점, 화장실과 세면실이 멀다는 점을 불편한 점으로 꼽았다. 레크레이션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편의를 위해 일부러 한옥의 불편한 점을 개선한 것이, 본 한옥의 그대로를 보여주지 못했다며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편병율씨(49)는 “순수한 한옥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인 느낌의 단정한 한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장작이나 굴뚝의 연기도 보이지 않아 사람 사는 냄새가 덜 났다”고 말했다. 김명숙씨는 “옛날 등이나 예스러운 물건이 있어 옛날 분위기를 더 살렸으면 좋았을 것 같다”라고 했다.

한옥 활성화
이번 숙박 체험 참가자들은 모두 한옥의 활성화를 원했다. 다만 그 방향은 약간 달랐다. 주거공간으로 한옥을 활성화하려면 한옥의 장점은 살리되 불편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 반면 관광상품으로 한옥을 활성화하려면 인위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다만 한옥을 관광상품으로 발전시키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한국관광공사 관광환경개선팀 명영씨는 “한옥은 목조건물이라 주기적으로 관리해줘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사실 강릉 선교장이 300년 넘게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거주자가 불을 때 습기를 제거하는 등 관리를 해줬기 때문이다. 결국 한옥 활성화를 위해선 지원과 관심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본채 전경

구석구석 전통한옥 숙박체험 이벤트
‘구석구석 전통한옥 숙박체험 이벤트’의 참가 기회는 한 번 더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5월 4일부터 5월 17일까지 ''''''''안동 군자마을에서의 하루''''''''를 신청 받는다. 자세한 일정은 차후 공지할 예정이다.

더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거나 참가하고 싶다면 한국관광공사 포털사이트(www.visitkorea.or.kr)를 참조하면 된다. 또한 한옥에 대해 더 궁금한 것이 있다면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한옥에서의 하루’(korean.visitkorea.or.kr/hanok)를 참조하면 된다. 이 곳에선 전국의 숙박 가능한 한옥정보와 한옥의 종류, 구조 등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관광환경개선팀 명영씨는 “기존에 한옥을 찾거나 체험하기 어려운 부분에 도움을 주고자 현재 한옥 숙박정보를 늘리고 있는 중”이라며 “내년쯤엔 한옥과 관광지를 연계해 추천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옛 선조들의 숨결과 슬기를 느낄 수 있는 전통 한옥이 주는 고즈넉한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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