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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사회와 사회통합 - 결혼 이주 여성을 중심으로
  • 뉴스관리자
  • 등록 2009-04-30 20: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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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우리 사회에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19세의 꿈 많던 베트남 여성 후안 마이가 2007년 5월 한국으로 시집 온지 불과 두달 만에 죽은 것이다. 후안 마이는 남편에게 구타당해 갈비뼈 18대가 부러진 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살해한 남편에 대한 법원 판결문의 일부를 인용한다.


“피고인만을 지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한 발로일 뿐이다. (중략) 이 자리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비록 극단적인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 판결에서 언급한 ‘우리 내면의 야만성’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문화주의 논의가 번창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다문화주의는 평등에 기초한 사회통합의 정치적 비젼을 표방하고 문화다원주의를 옹호하는 정치적 입장이자 정부정책이다.1).’ 이것은 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집단사이, 국민과 이주민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을 제거하고, 문화 소수자나 이주민의 통합을 위한 적극적인 우대정책을 펼치고자 하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때로는 경제적 효율성을 증대하기 위한 사회통합 전략의 일환으로 내세워지기도 한다. 이 경우 수용국가가 다양한 이주자들에게 ‘통합’에 대한 공정한 조건을 제시하고 이행하는 것이 다문화주의 정책의 기본목표라 할 수 있다2).


2008년 5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144만명의 장기체류 외국인이 있지만, 정부는 단기 이주자인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다문화주의 정책을 펴지 않고 있다. 다만 정착형 이주자인 결혼이주자 여성이 급증한 이유로 다문화주의 정책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후 결혼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국어교육을 실시하게 되었고, 그들과 자녀들에 대한 복지정책이 도입되었다.


통합정책은 ‘특정국가에 사는 것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책임과 권리를 규정하고, 시민과 비시민간의 구분을 만들거나 변화시키고자 하는 구체적인 규범이나 법, 담론’을 의미한다3). 그래서 통합정책은 시민이 되는 것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이주자들을 훈육하는 이중적인 효과를 갖는다. 통합정책은 본래 목표와 집행 결과에 차이가 많이 일어나는 정책이다4). 많은 국가들이 언어테스트를 도입하여 국적을 부여하지만, 실제적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이 부족하고 부실하게 운영되어 이주자에겐 언어를 배우는 것이 새로운 부담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Lister 등(2007)은 유럽 9개국의 사례를 들어 이주자의 통합이 가장 잘 이루어진 경우는 이주자가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이주자들의 소속감과 참여를 높인 경우였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주여성의 경우, 복지혜택을 통한 사회적 지원은 그들을 실업에 의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여성 이주자들을 노동시장에 참여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가장 효과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최근 결혼이주자와 관련된 법률과 정책이 다양하게 제정·시행되고 있다. 2008년 6월의 ‘국제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동년 9월의 다문화가족지원법과 올해부터 시범시행되는 ‘사회통합프로그램 표준화 및 이수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다문화가족지원법 등에서 다문화 내지 사회통합에 대한 구체적 개념 정의는 없다. 사회통합에 대한 합의된 법적 개념이 없어 구체적인 정책추진에 혼선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5).


또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정책이 여전히 부계 혈통주의에 기반을 둔 자민족 중심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결혼이주자들이 한국에서 처하는 어려움의 근본원인은 출신국에서 이주하는 과정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앞에서 거론한 후안 마이의 경우와 같이 현재의 결혼중개방식은 비용을 지불하는 ‘남성’의 이해와 이윤을 추구하는 결혼중개업자의 이해에 따라 이주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으로 이어지게 된다6).


결국 이주자에 대한 통합은 안전한 이주를 통해 한국사회의 동등한 참여자로 소속감을 가지게 하는 정책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이주여성들이 한국사회의 저출산 문제나 노동력 부족을 해결할 대체인력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새로운 시민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주과정에서 안정된 이주를 보장하는 법적 조치를 강화하고 ‘우리 국민 중심적’인 법과 제도에 내포된 차별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또한 이러한 제도가 다문화가족 지원과 사회통합정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결혼이주 여성뿐 아니라, 인도적 사유에 의한 난민신청자와 그들의 자녀, 단기적으로 체류하게 되는 외국인 근로자 그리고 유학생의 문제를 우선순위에 따라 체계적으로 논의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7). 또한 고급인력이 국내에 이주하여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 교토 근방의 ‘우토로’에는 한 세기 전 우리 민족이 일본에서 당한 박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앞으로 한 세기가 지나간 이후, 베트남에서, 캄보디아에서, 필리핀에서 우리나라를 또 다른 ‘우토로’로 기억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들 결혼이주 여성들과 인류의 보편적 문명 발전을 위해 노력한 대한민국을 칭송하는 소리가 들리기를 기대한다.

노연홍 보건복지비서관
 
10일 충북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 ‘장이 익어가는

마을’에서 열린 장 담그기 체험행사에서 다문화가정

주부들이 메주를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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