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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의 단상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8-30 08: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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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37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하기에 앞서 마지막 10년, 특히 3년 동안 불꽃처럼 생을 태우면서 모두 1천 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1890년 7월의 여름 날 밀밭에서 권총으로 삶을 끝냈을 무렵에 그는 파리 북쪽 교외의 한적한 오베르 쉬르 와즈 마을의 ‘라부’라는 카페에 하숙하고 있었죠. 고흐 기념관이 된 그 카페에 9년 전 들렸을 때 거기엔 그가 끊임없이 동생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이 액자에 담겨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언젠가는 전시회를 하는 날이 오겠지…”

반 고흐의 개인전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반 고흐가 작고하자 동생 테오가 형의 친구인 에밀 베르나르 화가 등과 함께 회고전을 준비했으나 테오마저 죽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반 고흐의 일생은 소설입니다. 화상 직원에서 전도사로, 어학 교사에서 서점 점원으로, 늘 만족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배척과 세상의 몰이해 속에서 고뇌했습니다. 여인에 대한 청혼은 생활 수단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되었습니다. 그가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기 위해 보리나즈라는 탄광지대에서 전도사를 할 때에는 지하 700미터의 탄광 막장까지 들어가 광원들의 참상을 지켜봤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항상 짓밟혀야 하는가, 광원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했던 그에게 경악한 기성 교계는 그를 배척했습니다. 동생의 권유와 함께 그림을 통한 표현에 소명을 느끼고 뒤늦게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 ‘석탄을 진 사람’, ‘직조하는 사람’, ‘구두’, ‘씨 뿌리는 사람’ 등 반 고흐의 많은 작품들이 숙명처럼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암울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그림을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반 고흐는 살아 생전에 두 점의 그림과 열두 점의 펜화를 팔았을 뿐입니다. 화상이었던 동생이 보내오는 약소한 돈은 그림 재료를 사기에도 모자라서 며칠간 굶거나 커피만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빛과 색채의 새로운 해석으로 칭송 받는 그가 미술아카데미 콩쿠르에선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초급으로 낙제했습니다.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에 의사는 그가 건네는 그림을 싫다고 했습니다. 마지 못해 받아 든 그의 그림은 닭장의 문틀 대용품으로 쓰였고 아이들은 그림을 과녁으로 사용했습니다.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는 심지어 동네의 바보도 반 고흐를 찾아와 “나도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죠.

반 고흐가 세기를 건너 뛰어 파리에서 1만 킬로미터 떨어진 코리아의 서울에서 그의 전시회가 열렸던 것을 안다면 “이제 내 그림을 전세계에서 알아주는구나”하며 기쁨이 클 것입니다. 그렇게도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그였기에… 한국에도 번진 빈센트 반 고흐의 숭모 열기는 이미 고전이 된 그의 그림에 대한 당연한 경의의 표시입니다. 반 고흐 사거 118년, 그의 작품은 인류의 문화 유산입니다.

그런데 필자는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별이 빛나는 밤’ 혹은 ‘밤의 카페 테라스’ 같은 반 고흐의 그림에 우리나라 저명 가전회사의 광고가 파고드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물론 광고회사는 반 고흐를 존경하고 그의 친숙한 대중적 이미지를 이용하기 위한 선의에서 소위 ‘아트 마케팅’이라는 광고를 만들었겠지요.

하지만 돈, 여인, 가정, 그림의 평가와 명성, 그 어느 하나도 철저하게 박탈당했던 반 고흐의 불행한 초상을 생각하면 필자는 씁쓸한 마음이 됩니다. 시대의 희생자였던 최고의 예술 작품들이 영리를 위해 또다시 희생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그런 광고가 혹시 반 고흐의 그림을 모독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필자 하나 뿐일까요?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 각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개량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 보도기사와 칼럼을 써왔다. 그는 동구권의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을 역임했으며 신문사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에서 체득한 뉴미디어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 저서로는 병인양요 시대를 그린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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