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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것들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8-23 10: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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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슈바이처 박사에 관한 글을 읽은 후 슈바이처 박사처럼 의사가 되어 병들고 버림 받은 이들을 위한 봉사생활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의사가 될 능력이 되지 않으면 나이팅게일처럼 간호사가 되면 어떨까, 환자를 사랑하는 아주 친절한 간호사도 좋겠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겁쟁이였는지 무서운 것이 많았습니다. 그 중 가장 무서운 것은 하필이면 주사 바늘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예방주사 맞는 날은 주사 바늘이 무서워 냄새 나는 학교의 화장실로 도망가서 숨기도 했고, 회충약을 전교생이 먹는 날은 마지못해 선생님 앞에 끌려가 벌벌 떨면서 간신히 넘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로도 평생 주사, 약과 피를 무서워하여 오지에 가서 의료 봉사하며 평생을 보내려 했던 소망도 접어야 했고 나이팅게일처럼 간호사가 될 꿈도 꿀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쥐 잡기 캠페인이 벌어지면 쥐를 잡아 쥐꼬리를 잘라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무시무시해서 그만 오징어 다리를 잘라서 가져간 적이 있습니다. 물론 거짓말하기 싫었지만 하필이면 뱀 다음으로 제일 무서워하는 쥐의 꼬리를 잘라 가져 오라는 지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엽기적인 일입니다.

무서운 것은 또한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어디선가 들리는 무당 굿하는 소리입니다, 둥둥 북이 울리면 머리가 꼿꼿이 서고 소름이 끼쳐 얼마나 무서운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집을 향해 마구 달린 적도 있습니다.

중학교 때 강제로 무용 선생님께 뽑혀서 잠시동안 솔로 무용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 서게 된 순간 얼마나 많은 눈들이 나를 향해 불을 켜고 있는지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뻔했으며, 너무 무서워 무대 공포증이 생긴 것 같아 무용도 그만두게 되었고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아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무서운 것 중의 하나는 고양이인데 그것은 지금도 변함 없어, 지인들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 댁의 고양이와 마주치면 비명을 지르고 도망 다니기에 정신이 없어 가능한 한 고양이가 있는 집은 잘 가질 않습니다. 우선은 고양이의 생김새와 울음소리가 싫고,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까지는 좋은데 잡아먹는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립니다.

고양이를 특히 무서워하게 된 동기는 미국의 추리 소설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의 단편, <검은 고양이(Black Cat)>를 읽은 것입니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림 같은 아름다운 사랑의 시, <애너벨 리(Annabel Lee)>를 쓴 그가 어떻게 무섭고 끔찍한 납량 특집 같은 검은 고양이를 썼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포의 양극성을 말하여 주는 것 같습니다.

낯선 도시 혹은 시골 여행길에서나 동네 집 근처의 밤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도 무섭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이기도 한 것일까요? 헛소문이 나는 것도 무서워하게 되고, 뜻하지 않은 언어나 무심코 의미 없이 한 행동으로 인하여 생기는 오해도 무섭습니다. 성장을 하면서, 어른이 되어 가면서 여전히 어려서와 똑같은 무섬증이 변함없기도 하지만 또 새로운 무서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얼마 전 어떤 분에게 부탁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오래 소식 끊어진 지인의 안부를 알고 싶었는데,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지만 인터넷으로 들어가면 내 칼럼을 읽는지 아예 열어보지도 않는지 알 수 있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신기하기도 하여 나의 칼럼이 그녀에게 전달되어 그녀가 인터넷을 열어서 칼럼을 읽는지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열어 본다면 어딘가 살아 있구나, 참 좋은 편리한 세상이라고 여겼습니다만, 곰곰이 며칠간 더 생각해 보니 물론 그녀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되어 좋은 편리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신인이 보낸 이메일을 수신인이 열어 보는지 열어보지 않는지까지 알아낼 수 있는 시대, 남의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서 타인의 개인 정보를 훔쳐볼 수도 있는, 이 현란한 시대의 적응에 반 박자 아니 한 박자만큼 서투르기만 한 나는 어떻게 발을 맞출 것인지 고민이 많습니다. 지나친 문명의 발달, 필요악 속에 흘러가는 세상이 별의 속도로 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컴퓨터 문화의 급속한 발달은 인간이 걸치고 있는 마지막 옷조차 벗기지 않을는지….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음을 절감합니다.








필자소개



오마리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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