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손을 사랑하라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7-12 10:37:43

기사수정
 
내 손은 참 작습니다. 손가락도 길지 않습니다. 더욱이 날씬하게 쭉 뻗어 있는 여성적인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그러한 손을 곱게 간수한 적은 더더욱 없어 손을 예쁘게 보이려 매니큐어를 바른 적도 드물며, 손톱을 길러본 적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손을 예쁘게 보이려고 손톱을 기르고 색을 칠해 보았더니 작업하고 음식하는 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시기에 손가락을 1년간 쓰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생리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손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 고통을 겪던 어느 날 불현듯 “손가락이 재주있게 생겼네” “참 바지런한 손이네”하며 어느 분들이 칭찬해준 기억이 새삼 떠올라 함부로 마구 쓴 내 손에게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내가 아는 분들 중에는 많은 책을 쓰느라 손가락 검지 중지가 이상해진 사람, 패턴사로 가위질을 많이 하여 형태가 변형되어 있거나, 평생 직업인 조립하는 일로 손가락이 옆으로 휘어 돌아간 사람도 있습니다. 나 역시 오랜 작업과 집안일로 손의 형태가 거칠어졌습니다만 그보다도 유난히 잊을 수 없는 손이 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게 된 연고로 친해진 분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집에 오고 가고 내 사무실에서 담소하기도 했는데, 한 번도 그녀의 손을 주의 깊게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손이 제 눈에 클로스업 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은 노년의 나이가 아니었는데도 그녀의 손은 100세나 됨직한 노인에게서 볼 수 있는 주름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도예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도예가였습니다. 그 손의 험하고 수많은 주름은 그녀가 오랜 시간 흙을 주무르고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구워낸 결과입니다. 시각적으로 아름답지 않은 그 주름들은 작업의 연륜을 증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손이 추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경탄과 함께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손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집안일로 사랑을 심는 주부의 손, 땡볕에서 흙과 씨름하는 농부의 손, 끌과 망치로 조형의 미를 창조하는 조각가의 손, 먼지와 소음 속에서 톱질하는 목공의 손, 오랜 집필로 손가락이 변형된 작가의 손, 전지가위를 휘두르는 정원사의 손, 손가락이 생명인 연주가의 손, 수화를 하는 손, 그 손들은 그들의 삶입니다. 그 손이 외형적으로 아름답지 않아도 그 손에는 그가 살아 온 흔적이 있고 그의 삶이 그 손에 있기에 존경스러운 것입니다.

또한 손은 마음의 표정입니다. 손을 머리 위에 얹을 때, 바지 주머니에 지르고 있을 때. 토닥토닥 누군가의 등을 두드릴 때, 눈을 비빌 때, 손을 앞으로 모으거나 뒤로 모으고 있을 때 등등 매번 심상이 흐르는 초점의 동향을 가장 정확하게 그려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심코 움직이는 손의 방향은 우리 가슴 속에서, 머리 속에서 현재 무슨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가늠케 하여 줍니다.

우리의 몸 중, 일생을 통하여 가장 수고를 많이 하는 신체 부분이 손과 발이 아닐까 합니다. 발은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평생의 수고로움이 많아 불쌍하고, 손은 한시도 없어서는 안 될, 죽을 때까지 수많은 일을 치러내는 나의 비서이자 삶의 공로자입니다. 이 손으로 얼마만한 일을 해왔는지 아무리 생각하여도 불가사의하기만 합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하였는지 한 번 쯤 헤아려 보는 것도 손을 위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세수, 이 닦기, 머리 빗기에서부터 옷 입기, 콧물 눈물 닦기, 똥 닦기, 문 열기, 청소하기, 책 읽기, 글 쓰기, 그림 그리기, 차표 사고 지하철 손잡이 잡기, 운전하기, 도마질하기, 손잡기, 껴안아 주기, 그리고 사랑도 하기......

한 사람의 인생에서 손은 평생 쉴 수 없이 움직여야 하는 슬픈 운명의 지체입니다. 수면시간을 제외하고는 발이 쉴 때도 손은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킨 대로 움직여 준다고 항상 만만하여 부려먹을 생각만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더욱이 어두운 일,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 평화를 해치는 일에 가여운 손을 이용해선 안 되겠지요. 사람들은 얼굴에는 온갖 호사를 시키면서도 손에 대한 사랑에 인색합니다. 얼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일생 내 몸을 대신해 움직일 손입니다. 그에게도 많은 관심과 충분한 휴식을 주어야 하겠습니다.








필자소개



오마리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서울 27일, 부산 23일째 '역대 최장 열대야'…곳곳 밤더위 기승 서울 27일, 부산 23일째 '역대 최장 열대야'…곳곳 밤더위 기승제주는 33일 연속 열대야, 인천도 최장기록 경신 앞둬(전국종합=연합뉴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밤이 돼도 더위가 가시지 않으면서 전국 곳곳에서 역대 가장 긴 열대야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17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저녁부터 이날 아침 사이 지점별 최저기온은 서울 ...
  2. 尹 "삐약이 신유빈 팬 됐다…민생·안보 대통령 금메달 따고파" 尹 "삐약이 신유빈 팬 됐다…민생·안보 대통령 금메달 따고파"파리올림픽 기념행사 깜짝 참석…"국민에 용기와 자신감" 선수단 격려"밤잠 못 자고 경기 챙겨봐…여름날 시원한 선물 준 선수들에 감사"(서울=연합뉴스) 곽민서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2024 파리 올림픽 기념 행사에 참석해 선수단을 격려했다고 대통령실 정...
  3. 논산소방서, 을지연습·민방위 훈련 연계한 '전국 동시 소방차 길터주기 훈련' 실시 논산소방서, 을지연습·민방위 훈련 연계한 '전국 동시 소방차 길터주기 훈련' 실시 논산소방서(서장 김경철)는 오는 22일 오후 2시부터 을지연습·민방위 훈련과 연계해 전국 동시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이번 훈련은 민방위 날과 연계해 전국 소방서에서 동시에 진행하며, 긴급차량의 신속한 ..
  4. 물놀이장 찾은 북한 수해지역 어린이들 물놀이장 찾은 북한 수해지역 어린이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수해지역 어린이들이 지난 16일 평양 문수물놀이장과 릉라물놀이장에서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2024.8.17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nkphoto@yna.co.kr(끝)
  5. 해상생환훈련 시범 보이는 공군 교관 해상생환훈련 시범 보이는 공군 교관 (서울=연합뉴스) 공군이 지난 14일 경남 해상생환훈련장에서 조종사 해상생환훈련을 실시했다고 17일 밝혔다. 사진은 공군 교관이 취재진에게 낙하산 견인 훈련 시범을 보이는 모습. 2024.8.17 [공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끝)
  6. '지방소멸 대응' 공주시 임신부 건강관리비 지원·주 4일 출근 '지방소멸 대응' 공주시 임신부 건강관리비 지원·주 4일 출근(공주=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충남 공주시와 공주시의회가 저출생과 지방소멸 위기 대응을 위해 임신부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등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조성에 나섰다.17일 시의회에 따르면 국민의힘 권경운 의원은 최근 '공주시 출산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
  7. [전국 주요 신문 톱뉴스](19일 조간) [전국 주요 신문 톱뉴스](19일 조간) ▲ 경향신문 = 경찰은 막고, 법원은 조건 달고 윤 정부서 '집회 제한' 늘었다 ▲ 국민일보 = 李 85% 압승… "영수회담 하자" ▲ 매일일보 = 고금리에 빚더미 산업계 줄도산 '비상' ▲ 서울신문 = 두 손 번쩍 ▲ 세계일보 = '일극' 굳힌 이재명 "국정소통 영수회담 하자" ▲ 아시아투데이 = 내.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