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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어머니의 사후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6-14 12: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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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떠나신 지 수년이 흐른 어느 가을날, 잃었던 건강을 어느 만큼 회복한 나는 드디어 한국 방문길에 올랐습니다. 어머니께서 선영을 이장하신 후, 전기 전화를 끌어오고 다리를 놓고 수십년 간 심어온 나무 화초 유실수들이 넘실대는 곳, 존 바에즈의 노래처럼 솔밭 사이 오솔길 옆 호수물이 흐르고, 돌다리 건너로 봄이면 철쭉과 영산홍이 언덕받이 따라 화사했던 그리운 그곳을 찾는 발길이 예전처럼 기쁘지 않았습니다.

작은 폭포가 떨어지는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돌면 산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다리를 건너 언덕 받이 오솔길로 들어서자 어머니께서 언제나 앉아서 떠나가는 자손들을 전송하시던 정자도, 외로움에 잠긴 큰 눈을 힘없이 뜨고 몸을 기대어 의지하시던 커다란 후박나무도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새로 고용한 관리인이 그곳의 추억을 모르고 너무 울창하여 태양이 필요했는지 잘라 버렸는데, 아름드리 동백마저도 뭉텅뭉텅 잘라낸 것입니다. 수십년 된 철쭉 영산홍은 누가 파내어 갔는지 군데군데 머리털 빠지듯 흉해진 상태였습니다. 집 앞의 연못은 흙으로 메워 버리고 길도 집도 모두 쇠락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 살아 생전에는 여름이면 연례행사가 있었습니다. 온 가족 3세까지 모여야 하는 여름의 향연입니다. 수십명의 대가족이 모여 3세들의 장기자랑, 수영, 보트타기, 스포츠 대회등 가족 콩쿠르가 진행되고 어른은 어른대로 오랜만의 휴식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낚시, 다슬기 잡기 등 자연학습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가족회칙에 의한 회의 진행과 감사(주로 사위가 하였음)는 물론 여름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가족에는 많은 벌금을 물릴 만큼 엄격했던 이런 시간을 통하여 가족 간의 유대는 강해지고 상하 예절교육도 자연스레 이루어졌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이 연례행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즉 어머니를 향한 구심점과 결속력이 무너진 것입니다. 거기에 더 기가 막힌 일은 가질 것 다 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큰오빠의 아들, 그러니까 장손이 오빠가 돌아가시자마자 선영을 팔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조상들이 묻혀 있고 할머니가 심혈을 기울여 가꾼 산정까지 모두 팔겠다고 선언하여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법정에까지 가게 되었고, 형제들이 돈을 모아 장손에게 줌으로써 장손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했으나 더 많은 돈을 요구하여 법정에서 오랜 시간을 끌게 되었습니다. 결국 부유한 언니와 작은오빠가 많은 돈을 지불하고 그곳을 인수하여 조상들의 묘지를 납골당으로 만들고, 그곳에다 골프장을 하겠다는 역시 또한 희한한 아이디어를 낸 것입니다.

어머니가 가꾸신 수목과 산을 헤치고 산수 좋은 골프장을 하겠다는 두 형제는 이재에 밝은 사람들이라, 애초에 인수하면서부터 자연 그대로의 선영을 지키려는 뜻이 아니었고 부를 더 늘리겠다는 목적이 서로 맞아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나머지 형제들에게 얼마씩 돈을 나누어 주고 두 사람이 인수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나의 집안 대가족은 2세 3세 포함하여 현재 총합계 38명의 여성(딸 며느리, 손녀 손자며느리)이 인연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누구도 나의 어머니와 같은 인격을 갖춘 여성은 없습니다. 그것이 부끄럽다고 생각조차 하는 여성도 없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이기심과 부만을 추구해온 부모 아래서 성장한 3세들은 더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선영을 팔아 먹겠다는 장손을 나무랄 수만도 없지 않겠습니까?

오래된 사찰과 송림이 우거지고 잔잔한 개여울이 흐르던 선영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이제 아파트가 개발되어 버스들이 들락거립니다. 아름답던 사찰은 퇴락해가고 송림은 공해로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한 아름다웠던 가족도 그렇게 핵가족의 이기심과 황금만능주의의 공해에 찌들어 무참히 와해되어갔습니다. 잘려져 뒹굴던 동백나무, 후박나무의 몸뚱이들처럼 말입니다. 가족들의 혼(Soul)이 흐르던 그 호숫가도 유흥지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하시던 언행을 나는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밥상에 차려진 흰 쌀밥을 머슴들 밥솥에 넣어 섞어 버리시고, 어머니 밥상에만 오르는 고기 반찬을 일하는 이들 밥상에 갖다 놓으시며 밥하는 아주머니를 야단 치시던 어머니이셨습니다. 산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더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지론이었습니다 .

“내가 노인정에 가면 반갑다고 노인들이 서로 내 손을 잡고 악수하려고 하는데 나는 가장 옷을 남루하게 입은 노인부터 먼저 손을 잡는단다.”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는 인연은 두 번 다시는 오지 않는 인연입니다. 그 소중한 인연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짝사랑처럼 홀로 이곳에서 형제를 그리워하던 마음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접어야만 하는 슬픔이 있습니다. 모두가 욕심의 주머니를 털털 털어 다 비워 버릴 수만 있다면, 아니 모두가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만 하여도 그런 아름다웠던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지 않을까요?









필자소개



오마리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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