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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 세계화에 따른 시장개방과 치열한 경쟁 등으로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부대끼며 살고 있다. 식당에서도 시간에 쫓겨 음식을 해치우듯 하며, 술자리에서도 여유 있는 권주보다는 바삐 돌아가는 폭탄주에 금세 취하곤 한다. 우리의 이러한 “빨리빨리” 문화가 IT 강국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삶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음에도 주위에서 ‘살기 힘들다’는 말이 흔하게 들리는 걸 보니 우리네 삶의 질은 겉모양과는 다르게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아이들은 입시교육에, 어른들은 각박한 경쟁사회 속에서, 노인들은 가족공동체의 붕괴에 따른 소외로 또 다른 풍요 속의 빈곤을 겪고 있는 듯하다.
삼시세끼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단군 이래 최대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현재의 삶은 왜 이렇게 바쁘고 힘들어졌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의 목표와 본질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김종철 옮김, 녹색평론사)는 그러한 성찰의 여정에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스웨덴 출신 여성학자인 저자가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험한 산악과 깊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인구 13만명의 라다크를 처음 방문한 것은 인도 중앙정부의 결정에 따라 외국 관광객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 1975년이었다.
거칠고 황량한 풍토 속에서 온갖 불리한 자연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며, 내면적 평정을 누리고 물질적으로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이 사회의 모든 것이 서양에서 온 저자에게는 신비롭게만 비쳤다.
그러다 서구문화의 침입으로 수천년 이어온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환경이 파괴되고, 고유한 언어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존엄성마저 부정하게 되는 엄청난 라다크의 변화 속에서 16년 동안 이들의 전통적 삶을 체험하고 이해한 저자는 새로운 대안 모색을 고민하게 된다.
라다크의 경험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오염, 가족 공동체의 와해, 전통문화의 해체 등의 문제들이 긴밀히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서구의 단일문화에서 탈피하여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상호관련성에 기초한 넓은 세계관을 발전시킬 것을 제시하고 있다.
현대 과학 문명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자연에 기초를 두고 수천 수만년 이어온 전통적인 사회가 여러 가지 결함과 한계를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해답을 준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저자가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을 통해 시사하는 바이다.
그렇다고 현대문명을 외면한 채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서구식 발전은 자원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인간의 책임을 망각한 개발체제임을 깨닫고, 우리의 올바른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의 전통 속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좋은 점을 찾아 지역에 맞게 발전시켜나가는 근본적인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땅과 자연을 벗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부처님이 계실 자리는 없습니다. 미물까지도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지 못하고서는, 돌 하나 놓인 자리의 의미를 존중하지 않고서는 보살의 향훈은 피어오르지 못합니다”라는 불교환경연대의 창립선언문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 본 기고문은 세계일보 5월 17일자에 함께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