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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섬기겠다면
[김영환]
늑장 공천으로 지지리도 재미없던 18대 총선이 끝났습니다. 투표율이 46%라니 어느 선진국이 이렇게 낮은 투표율로 정치에 냉담할까 한탄스럽습니다. 민의의 대표성과 관련한 하자를 제거하기 위해 앞으로는 투표율이 50%를 밑돌면 경우에 따라 주민들에게 부담을 주어 재투표를 실시하고 득표율이 50%가 안되면 결선투표를 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필자는 투표일인 4월9일 일어나자 마자 세수만 하고 아내와 함께 투표한 뒤에 북한산에 가려고 배낭을 메고 나왔습니다. 딸에게는 꼭 투표하라고 당부를 남기고요. 진달래 꽃이 흐드러진 북한산 등산에서 돌아오니 딸은 외출했고 투표안내용지는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투표를 뭐 하러 해요?” 내 딸이 이러니 다른 젊은이들이 어떠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산 등산로 입구인 6호선의 독바위 역은 아주 깊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4번쯤 타고 나서야 지상으로 나왔습니다. 출구는 하나 뿐. 밖으로 나오니 좁은 길과 등산 용품 가게 한 곳, 김밥 파는 집 한 곳이 보였습니다. 유명한 건설회사가 재개발인 듯한 아파트 부지를 깊게 파놓은 모습을 빼곤 역세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풍경이었습니다.
연립주택들이 늘어선 골목길에서 붕어빵을 사 들고 가면서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이 동네는 무슨 동(洞)이지?” 모두 대답을 못했습니다. 문득 담벼락에 선거벽보가 보였습니다. 은평 을구 ‘실세중의 실세’라는 이재오 의원과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낯익은 얼굴이 있었습니다. 옆의 연립주택 현관에 불광1동이라고 쓴 간판이 달려 있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137만여 표를 획득한 문국현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가 대재앙이라면서 대운하의 전도사 격인 이 의원 지역구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40여년을 은평구에 살아오며 지역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3선의 이 의원은 “은평구는 지역발전과 무관한 개인의 정치적 야심을 채워주기 위해 아무나 국회의원을 시켜주는 그런 곳이 아니다”고 반박했었습니다. 문 후보는 이 의원을 눌렀죠.
정말로 여당이 국민의 ‘머슴’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승패’를 가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아야할 것입니다. 비록 한 지역구가 대운하 찬반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승패의 상징성을 무시하고 지역구 현상으로만 축소하려 든다면 더 큰 민의와의 충돌을 맞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농민출신 강기갑 의원이 한나라당 공천의 주역 이방호 사무총장을 누른 것입니다. 강 의원은 한미 FTA에 반대하여 단식투쟁도 불사했었죠. 그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농업이 공업의 희생이 되어도 된다는 생각은 곤란합니다. 날로 치솟는 곡물가격이 보여주듯이 식량의 안보자원화도 멀지않습니다. 스스로 길러 먹어야 하는 날이 옵니다. 공산품을 생각해 보더라도 경쟁력의 원천은 FTA가 아니라 고품질과 저가격의 무장이죠. 오늘날 일본 자동차는 FTA가 없어도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친박연대 14명 무소속 25명 등 39명에 이르는 당선자들을 보면서 바닥 민심과 공천심사위의 자칭 ‘공천혁명’이란 것이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가를 체감했습니다. 공천에 탈락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해 살아 돌아온 어느 현역의원은 “어느 후보가 이곳에서 탈락하면 저곳으로, 저곳에서 탈락하면 또 다른 곳으로 ‘전략공천’ 했다”고 공천심사를 비판했습니다. 이제 다시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벌어질 모양입니다. 자원낭비죠. 상향식 민주 공천이라고 자랑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공천이 중앙집권적이 됐나요.
당선자들, 국회의원 한 명 유지비가 1년에 22억원이라고 어느 방송은 소개하던데요. 정말 세금 값 하는 의원들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민생법안만 봐도 정치인들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책임을 잘 지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자기가 벌어 먹고 사는 국민들은 요즘 고유가에 고물가, 고세금으로 하루하루 살기가 정말 팍팍합니다. 불만이 누적되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니 요즘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선 시민들이 물가고에 항의하여 시위를 벌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들 나라보다 형편이 좋은 게 결코 아니죠. 그러니 정말로 머슴처럼 일 잘할 준비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