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S씨 그대에게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3-24 01:40:47

기사수정
 
S씨 그대에게



당신의 글을 읽은 후, 오래 전 저의 삶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홀로가 아닌 홀로의 긴 6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던 때의 기억입니다. 아직은 해야 할 공부가 더 남아 있었고 가장의 역할에서 다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입니다. 가족은 모두 귀국시키고 홀로 미국에 남아 정리해야 할 많은 일들과 귀국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으로 갈등이 많았던 상황이었습니다.

가족이 떠나버린 그 날, 덩그런 집에서 밀려오던 그 적막함과 홀로 다시 하루하루 살아야 한다는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금의환향이라고 웃으며 떠나갔지만 저는 공항에조차 나갈 수 없는 감성뿐인 사람인 데다 홀로 아기를 품고 일하며 낳아야 하는 서러움도 있었습니다.

매일 귀가를 하면 우편함을 열어 보는 것이 일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편함의 작은 문틈 사이로 비치는, 내부에 하얀 색이 어른거리지 않는 날이면 가슴이 내려앉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무슨 청구서라도 와 주었으면 할 만큼 외로웠던 시절이었습니다.

S씨

홀로서기를 잘 하여 부러운 여성도 있고 잘 못하고 서투른 여성도 있습니다. 밥짓기를 밥벌이보다 잘 하신다는 그대는 아마도 제 주변의 많은 한국 태생 여인들처럼 홀로서기를 잘 못하는 쪽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심성의 여성들은 직계 가족조차 없는 이국 생활을 견디기도 힘들 것입니다. 더욱이 갑작스럽게 자립까지 해야 하는 사건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생존과 직결될 때, 작은 새 한 마리가 태산을 넘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까운 지인들이 근래 이혼과 함께 뜻하지 않게 자립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부부 중 누구의 잘못이든 옆에서 보면 안타깝습니다. 특히 40대 이상의 한국여성들은 가정과 남편에 정신적으로 많은 의지를 하며 살도록 무의식적으로 어려서부터 길들여져 온 탓인지, 예상치 못한 이혼으로 가정의 해체와 독립해야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합니다. 아니 어떤 여인은 거의 자폐에 가깝게 폐인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전혀 준비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생긴 일은 정서적으로 소화를 할 수 없을 뿐더러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 만한 외로움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장애물은 힘겹기만 합니다. 혼자 생활을 능히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여성이 친권을 소유하고 자식들까지 부양하는 경우를 볼 때 정말 가슴이 저립니다.

S 씨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용기를 잃는 일일 것입니다. 용기와 함께 필요한 것은 긍정적인 생각을 시시때때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세뇌시키는 마인드 컨트롤이 무엇보다도 우선순위입니다. 마음 속의 생각은 현실로 이루어진다 하니 작은 일에서부터 매사 소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그림을 그리십시오. 그리고 결코 주저앉지 마시고 앞만 보고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새벽 깨어나자 갑자기 불교경전의 글귀 중 몇 구절을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이미 아는 글이겠지만, 그대 뿐 아니라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사는 여성, 가슴 시린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여성들 모두에게 보내고 싶은 글입니다. 이런 글들이 그대의 현실에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저 침묵이 오히려 고맙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글을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불교 경전 중 초기에 씌어진 <숫타니파타>의 몇 귀절을 발췌하여 씁니다.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과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 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지막으로 부처님 최후의 유언이자 설법 중 한 구절과 함께 S씨 그대에게 아껴둔 붉은 장미를 보냅니다. 부디 장밋빛같은 삶의 열정을 불러일으키시기 바랍니다.

“너희들은 다만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만을 의지하여라.”







필자소개



오마리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서울 27일, 부산 23일째 '역대 최장 열대야'…곳곳 밤더위 기승 서울 27일, 부산 23일째 '역대 최장 열대야'…곳곳 밤더위 기승제주는 33일 연속 열대야, 인천도 최장기록 경신 앞둬(전국종합=연합뉴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밤이 돼도 더위가 가시지 않으면서 전국 곳곳에서 역대 가장 긴 열대야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17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저녁부터 이날 아침 사이 지점별 최저기온은 서울 ...
  2. 尹 "삐약이 신유빈 팬 됐다…민생·안보 대통령 금메달 따고파" 尹 "삐약이 신유빈 팬 됐다…민생·안보 대통령 금메달 따고파"파리올림픽 기념행사 깜짝 참석…"국민에 용기와 자신감" 선수단 격려"밤잠 못 자고 경기 챙겨봐…여름날 시원한 선물 준 선수들에 감사"(서울=연합뉴스) 곽민서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2024 파리 올림픽 기념 행사에 참석해 선수단을 격려했다고 대통령실 정...
  3. 논산소방서, 을지연습·민방위 훈련 연계한 '전국 동시 소방차 길터주기 훈련' 실시 논산소방서, 을지연습·민방위 훈련 연계한 '전국 동시 소방차 길터주기 훈련' 실시 논산소방서(서장 김경철)는 오는 22일 오후 2시부터 을지연습·민방위 훈련과 연계해 전국 동시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이번 훈련은 민방위 날과 연계해 전국 소방서에서 동시에 진행하며, 긴급차량의 신속한 ..
  4. 물놀이장 찾은 북한 수해지역 어린이들 물놀이장 찾은 북한 수해지역 어린이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수해지역 어린이들이 지난 16일 평양 문수물놀이장과 릉라물놀이장에서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2024.8.17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nkphoto@yna.co.kr(끝)
  5. 해상생환훈련 시범 보이는 공군 교관 해상생환훈련 시범 보이는 공군 교관 (서울=연합뉴스) 공군이 지난 14일 경남 해상생환훈련장에서 조종사 해상생환훈련을 실시했다고 17일 밝혔다. 사진은 공군 교관이 취재진에게 낙하산 견인 훈련 시범을 보이는 모습. 2024.8.17 [공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끝)
  6. '지방소멸 대응' 공주시 임신부 건강관리비 지원·주 4일 출근 '지방소멸 대응' 공주시 임신부 건강관리비 지원·주 4일 출근(공주=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충남 공주시와 공주시의회가 저출생과 지방소멸 위기 대응을 위해 임신부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등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조성에 나섰다.17일 시의회에 따르면 국민의힘 권경운 의원은 최근 '공주시 출산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
  7. [전국 주요 신문 톱뉴스](19일 조간) [전국 주요 신문 톱뉴스](19일 조간) ▲ 경향신문 = 경찰은 막고, 법원은 조건 달고 윤 정부서 '집회 제한' 늘었다 ▲ 국민일보 = 李 85% 압승… "영수회담 하자" ▲ 매일일보 = 고금리에 빚더미 산업계 줄도산 '비상' ▲ 서울신문 = 두 손 번쩍 ▲ 세계일보 = '일극' 굳힌 이재명 "국정소통 영수회담 하자" ▲ 아시아투데이 = 내.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