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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이란 말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연말 대선에서 이른바 우파 세력이 득세한 것을 두고, 예상과 결과를 분석한 전문가들의 표현들입니다
시대정신의 정의는 비교적 단순해 보입니다, 어떤 이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이는 ‘국민이 공통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와 국가가 지향해야 할 규범의 융합’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시대적 정신은 한 두 번에 지나지 않습니다, 첫 번째는 이 승만 대통령이 주창한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 였습니다. 어려서 잘 몰랐지만 6.25 참화를 겪은 국민에게 ‘반공’은 반 강제된 국민적 합의였습니다.
두 번째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 정희 대통령 시절의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자’ 였습니다. 벼 품종 개량으로 보릿고개를 없애고, 수출입국 정책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한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그 과실 맛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 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지나친 독재와 독선으로 ‘개발독재’라는 비판에 묻혀 버렸습니다. 본인도 비명으로 생을 마감했고, 심지어는 자녀들에게도 ‘독재자의 자식’이란 멍에를 안겨 주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은 이념보다는 경제, 균형보다는 기회, 분배보다는 성장, 도덕성보다는 실용성을 선택했다고들 합니다. 결과적으로 ‘반 통일 세력’ ‘보수 골통’들이 시대 정신을 선도했다는 결론입니다.
과연 우리 현대사에 시대정신으로 각인될 만한 정신적 결정체가 있을까요? 참으로 단언하기 힘든 명제입니다. 진정한 시대정신은 특정한 시기나 공간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는 당대(唐代)를 역사상 가장 융성한 시기로 꼽고 있습니다. 후진타오 주석이 고도 성장을 토대로 ‘성당성세(盛唐盛世)’의 재현을 추구하는 것도 그 시대에 대한 희원 때문입니다.
찬란한 문화와 국부로 서양세계에까지 위력을 떨친 성당의 초석을 마련한 왕은 태종입니다. 태종은 무력으로 통일한 나라를 편안한 나라로 만드는 데 진력하여, 후세 사가들이 그의 치세 기간을 ‘정관의 치(治)’라고 찬미하고 있습니다.
정관(貞觀 서기 627-649년)은 태종의 연호입니다. 재위 24년 동안 태종의 치세 철학은 백성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었습니다. “기둥이 바로 섰는데 그 그림자가 굽어 있다거나, 위정자가 나라를 잘 다스리는데 백성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은 일찍이 없었다”는 통치 철학이었습니다.
반면 개화기 일본의 선각자 후쿠자와 유키치(1834-1901)는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깨어 있는 국민이 요체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많은 지혜자가 모여 하나의 형편없는 정치를 하고 있는 곳”이라고 격하했습니다.
나아가 “옛 정부는 무력만을 사용하였으나, 지금의 정부는 무력과 지력을 병용하고 있다. 옛 정부는 민중의 힘을 눌렀으나, 지금의 정부는 민중의 마음을 빼앗았다, 옛 정부는 민중의 육체를 정복하였으나, 지금의 정부는 민중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고 정부의 무소불위를 비판했습니다.
반면 “옛 국민은 정부를 두려워하였으나, 지금의 국민은 정부를 모시고 있다”며, 정부의 오만을 견제하려면 국민이 학문에 정진하고 독립심을 가지며 법을 지키는 성숙함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정부와 국민은 얼핏 대립 관계로 비치지만 ‘정부는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것이 민주국가의 정설입니다, 따라서 시대정신은 정부와 국민의 협의에 의한 합의(Consensus)를 토대로 정립되어야 가장 공고하고 지속적일 수 있습니다.
태종의 양신(良臣)인 위징(魏徵)의 말이 생각납니다. “어느 시대에도 백성을 모조리 바꿔 치우고 나라를 다스린 적은 없다. 제도(帝道)를 행하면 황제가 되고, 왕도(王道)를 행하면 왕이 된다”는 간언입니다.
영도자는 백성을 교화하고 백성은 법과 규범을 지키는 컨센서스로 시대와 불화하는 사람을 최소화 하는 것이 진정한 시대정신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