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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들이 잠 못 드는 이 겨울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1-21 13: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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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는 것은 먹을 것이 없는 계절을 지내는 적응의 수단입니다. 뱀 개구리와 같은 변온(變溫)동물은 외기온도의 저하에 따라서 체온이 내려가고, 물질대사의 속도가 저하되므로 겨울잠을 잡니다. 그것은 먹을 것이 귀한 시기를 넘기는 방법으로, 활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기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화하지 않는 동물의 선택은 먹을 것이 있는 곳까지 가든지, 아니면 잠을 자 활동을 제한함으로써 먹을 것이 귀한 겨울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바로 곰과 박쥐가 이런 방법으로 겨울잠을 잡니다.

곰과 박쥐는 겨울잠을 자기 위해 가을에 먹이를 많이 먹어 둡니다. 에너지를 지방으로 저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 포유동물의 지방은 백색 지방과 갈색 지방으로 나뉘는데, 열을 생산하는 지방은 갈색 지방입니다. 갈색 지방은 백색 지방과 달리 세포 내에 미토콘드리아가 들어 있고 또 혈관이 분포되어 있어 갈색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경우도 아기는 이 갈색 지방을 갖고 태어납니다. 이 지방은 목, 어깨, 그리고 척추 쪽에 분포돼 있습니다.

옛날엔 딸이 많은 집에 또 딸이 태어나면 엄동설한에 아기를 문밖에 내다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침에 가 보면 아기가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갈색 지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열을 발생하여 영하의 날씨에도 얼어 죽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갈색 지방은 곧바로 퇴화하고 맙니다. 이와 달리 곰 박쥐는 평생 갈색 지방을 갖고 삽니다.

몸집이 큰 곰과 몸집이 작은 박쥐의 겨울잠은 잠이 드는 깊이에 있어서 같지 않습니다. 일단 겨울잠에 들면 곰은 아주 얕게 잠이 들지만 박쥐는 아주 깊이 잠을 잡니다. 물론 이렇게 잠을 자다가도 외기의 온도에 따라 잠에서 깨어나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잠을 자기도 합니다.

박쥐는 동굴 입구에서 잠을 자다가 외기의 온도가 떨어지면 동굴 안으로 옮깁니다. 동굴 입구보다 안쪽이 기온이 조금 높기 때문입니다. 곰은 큰 나무동굴 같은 데서 몸을 웅크리고 새우잠을 잡니다. 외기의 온도가 내려가도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경우가 드물지만, 온도가 올라가면 잠시 잠을 깹니다.

이런 차이는 박쥐와 곰의 몸 크기가 달라 잠에서 깨어날 때 소비하는 에너지에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박쥐는 동면에 들어가면 체온이 0~10도에 이릅니다. 거의 체온을 30도 이상 낮추는 방법으로 잠을 자지만, 곰은 잠을 잘 때 체온이 1~2도밖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박쥐는 잠에서 깨어날 때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데 비해 곰은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습니다. 결국 잠에서 깨어나는 빈도가 잦아지면 곰에 비해 박쥐가 생명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곰과 박쥐는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박쥐는 호흡도 90분에 1회 정도, 맥박수도 1분에 10회 정도(잠을 자지 않고 활동할 때는 1분에 600회까지)로 매우 낮아 에너지 소모가 거의 없습니다. 이에 비해 곰은 잠을 잘 때의 호흡이나 맥박이 활동할 때보다 조금 낮긴 해도 그렇게 많이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활동할 때보다 에너지 소모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박쥐처럼 에너지를 줄이지 않습니다. 즉 박쥐는 희미한 촛불을 연소시켜 겨울잠을 자는 식이라면 곰은 원적외선 히터를 켜고 겨울잠을 자는 식입니다.

이런 차이는 몸의 크기 때문에 생긴 진화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 박쥐의 몸 크기로 곰처럼 체온을 거의 낮추지 않고 동면을 했다면, 박쥐는 거의 5~6개월 먹이를 먹지 않고 잠을 자야 하는데 불과 며칠밖에 견뎌낼 수 없게 되겠지요.

곰이 박쥐처럼 거의 0도까지 체온을 낮추고 동면을 한다면 동면 중에 에너지 소비는 훨씬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잠에서 깨어나려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한꺼번에 소모될 수밖에 없어 죽음에 이르는 원인이 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곰은 체온을 그렇게 낮춰 겨울잠을 자지 않으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들이 동면시기가 훨씬 지났는데도 겨울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곰들이 겨울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는 올해 유난히 겨울 날씨가 따뜻하고 도토리 등 먹을 거리가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날씨가 춥지 않아 잠을 못 자거나 깨어났다면 다시 겨울잠에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구 온난화로 겨울철 기온이 올라 잠에서 자주 깨어났다면 생존을 위한 먹이가 있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겨울잠을 자지 않더라도 영양분만 충분히 섭취하면 건강에 지장이 없다지만, 자연은 온도가 높아졌다고 해서 곰의 먹이가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온도보다 아주 중요한 것이 일조시간입니다. 동지가 지나 일조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면 동물과 식물은 봄을 준비하고, 다시 잎과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지구를 잘못 관리한 인간의 행위는 46억년동안이나 유지해온 자연의 법칙에 생태계의 갈등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겨 주고 있습니다.

박시룡 :경희대 생물학과 졸, 독일 본대학교 이학박사.
현재 한국교원대 교수ㆍ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 소장.
대표 저서「동물행동학의 이해」, 「과부황새 이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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