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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이라는 지우개
아흔 넘어 돌아가신 노모는 생전에 기억력이 비상해 모두들 감탄하곤 했습니다. 그런 노모도 언제부턴가 “내가 예전 일은 색경[거울] 보듯 또렷이 기억나는데 요즘 일은 돌아서면 잊어먹어”하고 탄식해서 기억력 부실한 자식들을 민망하게 했습니다.
정말 그 맑은 총기(聰氣)도 세월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기억 용량이 넘쳐 더 이상 입력이 불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점차 그제 한 얘기 어제 또 하고, 어제 한 얘기 오늘 또 해서 손자 녀석들이 ‘녹음기’라며 수군수군 흉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억이란 신기하게도 꼭 시간흐름의 역순으로 더 명확하게 새겨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래전 초등학교 선생님들 성함은 또렷이 기억나는데 나중 다닌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성함이 오히려 가물가물합니다.
기억(memory)의 사전적 의미는 과거의 경험이 어떤 형태로 간직되었다가 나중에 재생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일시적, 또는 영속적으로 감퇴, 상실되는 현상을 망각(forgetting)이라 합니다. 또 기억은 다른 기억흔적과의 상호 간섭으로 재생에 제약을 받게 되는데, 시간적으로는 뒤의 것이 앞의 것을 금지하는 ‘역행금지’ 현상이 강하다고 합니다.
어쩐지 개인적으로는 그 반대로만 느껴집니다. 정확히 시각의 기준선을 긋기는 어렵지만 어느 시간대 이전의 기억이 나중 기억보다 더 또렷하게 재생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대부분 예전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의 기억이 그 이후의 기억보다 더욱 또렷하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아들아이의 개구쟁이 시절이 생각납니다. 두어 살 되어 막 말을 익히느라 작은 입을 오물거리던 때 제 엄마가 녹음해둔 카세트테이프가 있었습니다. 대여섯 살 먹어 한창 말썽부리던 아이는 동네 꼬마들을 불러들여 예전 제 어릴 적 소리를 녹음한 테이프에다가 유치원서 배운 노래들을 신나게 불러 제쳐 덧씌워버렸습니다. 제 엄마가 안타까워 엉덩이를 때리며 법석을 떨었지만 이미 녹음테이프에서 귀여운 아기 목소리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참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녹음테이프를 정리하다가 뜻밖에도 영원히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두 살배기의 목소리가 부분부분 재생되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더욱 기이한 것은 나중 녹음된 개구쟁이의 소리가 생각처럼 선명하지 못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이 아이의 미숙한 녹음기 조작 덕분인지, 아니면 덧칠한 녹음의 일부가 세월에 씻겨나가 그 틈새에 옛 녹음 소리가 드러난 때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혼자 생각으로는 새 녹음이 예전 녹음을 지우개처럼 말끔히 지워버린 게 아니라 단지 예전 녹음 위에 덧칠되었던 것이려니 했습니다.
그런 후로는 사람의 기억장치도 녹음테이프와 마찬가지일 거라는 어설픈 이론을 세우게 됐습니다.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깨끗한 새 기억테이프에 처음 기록한 기억은 나이 들어가면서 그 위에 덧칠한 나중 기억보다 더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으리라는 믿음입니다. 아쉽게도 덧칠보다 더 고약한 망각이라는 지우개가 깡그리 예전 기억을 지워버릴 때도 적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저마다의 용량이 한정된 기억의 탱크 속에 온갖 궂은 것들을 꼬깃꼬깃 챙겨 넣어둘 필요는 없겠지요. 보다 유쾌한 기억을 담기 위해서라도 몹쓸 것들은 망각의 지우개로 싹싹 지워서 자리를 비워둘 일입니다.
오늘은 한 해를 정리하고 마감하는 날. 유난히 소란스러웠던 해를 넘기며 실없는 녹음테이프 이론으로 독자 여러분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망각의 지우개로 한 해를 지나는 동안 쌓인 불쾌한 일, 괴로운 기억들을 지우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형제나 이웃과의 불편했던 일들도 지우고, 먼저 가신님의 애달프고 고통스러웠던 일들도 지워서 기억의 테이프 위에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만 남아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