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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안에서.
고도 3500 피트, 도착지까지 거리 50마일, 도착 예정 시간 등의 비행정보가 모니터를 통해 반복되는 사이, 이제 곧 착륙하겠구나 짐작하면서 슬며시 눈을 감았습니다.
안락한 분위기를 애써 음미하며 창 밖으로 눈을 돌리다가 솜털로 깔아 놓은 이부자리 같은
운해(雲海)의 물결에 몸을 풀고 싶은 나의 유혹을 외면하고 비행기는 점차 고도를 낮춰갑니다.
이윽고 ‘쿵-끼이익’ 하는 마찰음이 덜컹거리는 출렁임으로 온 몸에 전달되면서 착지의
안도를 인지한 때문인지 기내는 고요하기만 한 순간이었습니다.
“야, 기장 xx놈, 겁주냐 ”하는 걸쭉한 막말에 이어 “여기 책임자 누구야! 나와 봐 xxx ”
잇따라 욕지거리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기내 분위기가 소란해졌지만 스튜어디스는 당혹한 나머지 미안하다는 말 몇 마디만
할 뿐 이렇다할 답변은 피하고 상대가 안 된다는 듯 음전한 모습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 주차장 톨게이트에서.
주차장에서 빠져 나가려고 톨게이트를 통과 하는 진입로에 차량이 진을 쳤습니다.
줄잡아 약 30대는 대기하고 있기에 무슨 불상사 때문인가 궁금해 차단기 주변을 살폈더니
주차료 징수원과 운전자 사이에 주차료 550원을 놓고 큰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운전자는 톨게이트에 자동차가 밀려 대기하는 시간 때문에 발생한 추가분 150원은 낼 수 없다는 주장이고, 징수원은 일단 톨게이트에서 확인하는 시간을 기준해야 하기 때문에 주차료를 내지 않고는 차단기를 올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성이 오가고, 육두문자가 거침없이 튀어 나왔습니다. 마침내는 “차량이 밀릴 것에 대비해서는 톨게이트를 하나 더 만들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주차료 더 징수 하려고 일부러 출구를 한 군데만 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삿대질까지 해대자 징수원은 더 답변을 피하고 말았습니다.
# 종합병원 로비에서.
퇴근하고 친지와 문병을 약속한 병원 로비로 들어서다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아해서 둘러보았더니 신관을 증축하고 구관을 보수하느라고 공사판을 벌이는 주변에
환자 보호자인 듯한 사람과 병원 관계자가 멱살잡이를 하는 바람에 철거중인 건축 자재와 폐기물들이 사방으로 널려지고 사람들이 구경하느라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원이 사람 살리는 데지 사람 잡는 데냐. 왜 지랄같이 공사판을 벌여 놓고 환자 출입을
불편하게 하는 거냐“ 라는 게 멱살잡이의 주제였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얌전하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병실 이용 안내문까지 부착 해 놨지만
보호자 입장에서는 막무가내라는 것입니다.
30여분 간의 문병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도 실랑이는 계속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저녁 늦은 시간이면 숙연 해지는 병원 내부는 온통 수선스러웠고 다른 환자와 가족들까지도
볼모가 돼 불편을 감수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며칠간에 눈으로 보았던 일들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막말을 한 사람, 주차료 문제로 긴 시간 실랑이를 한 사람, 병원에서
멱살잡이로 아수라장을 만든 사람, 이들이 벌인 번잡에 속을 끓였던 사람들의 심중이 안쓰럽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도처에서 목도한 몇 가지 사례들로 그들만을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같은 조그마한 에피소드의 발생이 순전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소치가 아닐까, 말없는 다수 혹은 마주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메마른 탓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대중이 공통으로 인지하는 사회적 몰가치에 너무 쉽게 편승 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소심한 감정을 감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매우 보편적인 상황에서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자신의
불편한 심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의 조그만 손해도 용납할 수 없다는 족쇄를 벗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불편은 없는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양수 : 현재 JIBS(제주방송)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1978년 KBS에 입사한 후 보도본부 문화부차장, 제주총국 보도국장, 제작 부주간, 시사보도팀장을 역임했다.1990년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바람도 휴식이 그리울 것이다’ 등 4권의 시집을 냈고 국제펜클럽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