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諸葛亮) 계자서(戒子書)
국내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 한 달 전에 세로로 써서 남긴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문장은 회남자(淮南子) 주술훈(主術訓)에 나오는 문장이다. "마음에 욕심이 없어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원대한 이상을 이룰 수 없다(是故淡漠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그러나 이 말은 제갈량(諸葛亮)이 계자서(戒子書)에 인용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제갈량을 정말 좋아한 이유는 단지 신출귀몰한 책략 때문만이 아니라 따로 있었다.
계자서(誡子書)를 읽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계자서'는 제갈량이 전장에서 죽기 직전, 8세 된 아들에게 남긴 유언 같은 글이다.
한자로는 총 86자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아비의 절절한 부정과 함께 그가 평생 지켜온 인생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조금 길지만 전문을 살펴보자.
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무릇 군자는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도달할 수 없다.
夫學須靜也, 才須學也.
무릇 배움은 고요해야 하고, 재능은 모름지기 배워야 얻는다.
非學無以廣才, 非靜無以成學.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慆慢則不能硏精, 險躁則不能理性.
오만하면 세밀히 연구할 수 없고, 위태롭고 조급하면 본성을 다스릴 수 없다.
年與時馳, 志與歲去, 遂成枯落, 多不接世, 悲嘆窮廬, 將復何及也.
나이는 시간과 함께 내달리고, 뜻은 세월과 함께 떠나가니, 마침내 낙엽처럼 떨어져 세상에서 버려지니, 궁한 오두막집에서 탄식해본들 장차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
어린 아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심오한 내용이다. 제갈량은 그의 아들이 '계자서'를 평생 의 원칙으로 지켜나가면 인생에서 큰 낙오점은 없으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제갈량의 마음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나이든 사람이라면 '궁한 오두막집에서 탄식한다'는 '궁려(窮廬)의 탄식'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흰 머리만 늘어나는 자신을 볼 때면 더욱 그럴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 또한 너도 나도 앞장서서 궁려의 탄식을 쏟아냈다. 몸이 갑자기 쇠약해지거나 과거에 했던 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밀려드는 회한 때문에 이구동성으로 탄식했다.
누군가는 '그럭저럭 지내다 보니 반생이 어그러졌다'고 탄식했고, 누군가는 '고식적인 안일만 꾀하다가 허송세월 했다'고 탄식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해 붓을 들었다. 아직 구만리 같은 인생을 앞 둔 자식과 조카와 후배들에게 제갈량의 마음을 담아 간곡한 어조로 편지를 띄웠다.
인생에 대해 빠삭하게 안다고 자부하는 나도 이렇게 후회가 많은데 부디 너희들은 나처럼 살지 말아라. 그런 뜻이 담겼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진리가 있기 마련인 것을.
훗날 제갈첨(諸葛瞻)은 위나라 등애(鄧艾)와 싸울 때 심모원려(深謀遠慮) 전략을 세우지 못해 패했지만, 우국의 굳센 뜻은 버리지 않고 장렬히 전사했으니 부친의 유훈을 절반은 지킨 셈이다.
제갈량은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고, 병법에도 정통한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어째서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으로 아들을 가르쳤을까?
사실 제갈량은 아들 제갈첨이 담박하기를 즉 욕심이 없기를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담박하게, 즉 목표도 없고 이룬 바도 없이 속세를 떠나 산에 은거하여 무위도식 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또한 아들이 '영정(寧靜)', 즉 평온하고 안일하게 세월을 보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갈량은 아들이 '담박명지(澹泊明志)' 하여 마음에 잡념이 없기를 바랐다. 욕심이 없어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더욱 명확하고 강한 야망이 생길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상태라면 명성과 관심에 얽매이지 않고, 세간의 화려한 유혹에 잠식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담박(淡泊)의 기운은 물이 세차게 흘러 생기는 안개처럼 부드러우며, 비바람이 몰아쳐도 변함없이 꼿꼿이 서 있는 소나무나 잣나무처럼 의연하다.
이와 함께 제갈량은 아들에게, 영정치원(寧靜致遠), '평온하지만 멀리 다다른다'는 훈계를 했다. 선량한 마음을 간직하고 경솔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이 평온해야 높디높은 하늘처럼 넓고 깊을 수 있다.
'담박'의 기운으로 사람의 뜻은 더욱 확고해 질 것이며, '영정(寧靜)'의 마음으로 사람은 지혜를 더해 만물을 통찰하고 당황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궁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얻었을 때 비로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람이 눈앞의 득실을 따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세상을 아우르는 지혜와 통찰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마음이 뿌옇게 흐려져 있고 욕심의 찌꺼기가 많은 사람은 올바른 뜻을 명확하게 세우기가 힘들다. 또한 마음이 불안하게 요동치는데 멀리 바라보는 안목이 생길 리가 없다.
담박함과 고요함이 위인들만을 위한 미덕이라 생각하지는 말자. 그것은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유용한 덕목이다. 그런데 그것은 한순간의 생각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평소 마음의 수양을 통해 서서히 길러지는 것이다.
조용한 곳에서 차분한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혹은 멀리 갈 필요 없이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끊고 차분히 숨 고르며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담박함과 고요함의 힘을 키우는 데 분명 도움을 줄 것이다.
⏹ 부모의 공부 타령
누구나 느끼듯 자기 자식 가르치기가 제일 어렵다. 부모로서 몇 마디 좋은 말이라도 해줘야 할 텐데 이게 참 어렵다. 그래서 옛 글에서 지혜를 빌려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중국인들이 신기묘산(神機妙算)이라고 칭송하고, 삼국지 팬들에게 지혜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제갈량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제갈량은 17세에 혼인을 했는데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다. 부득이 동생의 아들 제갈교를 양자로 들였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47세에 아들 제갈첨이 태어났다.
그 귀한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보내준 편지가 ‘계자서(誡子書)’이다. 계자서(誡子書)는 제갈량이 54세에 죽음에 임하여 8세 난 아들에게 훈계하며 준 글이다.
후에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諸葛瞻)은 유비의 아들인 2대 황제 유선(劉禪)의 행군호위장군(行軍護衛將軍)으로 중용됐는데 사마의 휘하의 장군 등애(鄧艾)로 부터 낭야왕(琅耶王)으로 봉하겠다는 것을 거절하고 전사했으나, 황제 유선은 항복하여 안락공(安樂公)에 봉해져 낙양에서 편안하게 천수를 누렸다.
誡子書 / 諸葛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