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대통령의 언어-‘대못질’
  • 뉴스관리자
  • 등록 2007-10-08 09:26:21

기사수정
 
어릴 때 시골 동네에서 목수가 집을 짓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는 연장통에서 커다란 대못을 꺼내 입에 물어 침을 묻힌 후 콧노래를 부르며 재목에 못질을 했습니다. 며칠이면 목수는 나무집의 골격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수는 산 사람의 집만 짓는 게 아니라, 동네 사람이 죽으면 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는 대신 담배를 입에 물고 굳은 표정으로 톱질과 못질을 했습니다. 못질의 절정은 입관할 때입니다. 시신을 관속에 안치하고 관 두껑을 덮으면 목수가 못질을 합니다. 유가족의 오열과 대못이 나무속을 파고드는 둔탁한 소리가 한데 뒤섞입니다. 죽은 사람이 눈을 뜨고 살아난다 해도 관 두껑을 열고나올 수가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산사람이 사는 집은 서로 통하게 못질을 하고, 죽은 자가 들어가는 관은 통할 수 없게 못질을 합니다. 못질은 생(生)과 사(死)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근래 노무현 대통령의 ‘대못질 하겠다’는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말 많은 기자실 통폐합을 강행할 의지를 "다음 정권에서 기자실이 되살아 날 것 같아서 확실히 대못질을 해버리고 넘겨주려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최근에는 제주도 서귀포시의 혁신도시 기공식 연설에서 “제 임기 안에 첫 삽을 뜨고 말뚝을 박고 대못을 박아버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못 박다.’ 참으로 일상적인 말인데 대통령이 이 표현을 쓰니 말이 많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못박다’ 또는 ‘못질하다’라는 낱말에는 세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첫째 의미는 ‘물건에 못을 박다’이고, 두 번째는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다’이며, 세 번째 뜻은 ‘다짐하다’입니다.

노대통령이 ‘못박겠다’는 표현의 의미는 재론의 여지없이 세 번째 뜻일 겁니다. “기존의 기자실을 못 쓰게 하겠다”거나, 자신의 또 하나의 정책인 “혁신도시를 차기 대통령이 포기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자극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쓰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또 어떤 자리에서 쓰는가에 따라 함축하는 뜻과 뉘앙스가 천양지차입니다. 같은 이슈를 놓고도 참모들과 사사롭게 대화하는 자리에서 쓴 말이라면 모르되,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평균적인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쓰는 말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어투까지도 국민의 감성에 영향을 줍니다. 노대통령의 ‘대못을 박겠다’는 표현은 그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보통사람의 언어감성에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표현에 시원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만 소수일 것입니다.

대통령의 언어는 의지가 강하게 배어 있되 품위와 절제가 있어야 국민을 안심시키고 편안하게 합니다. 같은 뜻이지만 ‘청소부’라는 말 대신에 ‘청소원’이 훨씬 품위 있고 ‘운전사’라는 말 대신에 ‘택시기사’나 ‘버스기사’가 듣기 좋습니다. 영어에도 완곡어법(euphemism)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사회발전에 따라 공적인 언어생활도 격이 높아져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노대통령은 얼마 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임기가 두 달이 남았든 석 달이 남았든 내가 가서 합의하면 후임사장(후임 대통령을 의미)은 거부하지 못 한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이것도 ‘대못을 박겠다’는 연장선상에서 나온 언어구사 스타일로 보입니다.
무엇인가에 대한 대통령의 분노가 느껴지는 말입니다. 기자실 통폐합과 혁신도시추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분노의 어법’입니다.

사람은 칭찬을 들으면 말도 고와지고 행동도 품위를 유지하려 합니다. 그러나 욕을 먹으면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는 것은 심리학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십여 년 전 김일성 사후, 세계의 이목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쏠렸을 때 주한미국대사를 지냈던 그레그씨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보통이기도 한 그레그 대사는 김정일의 성품에 대한 구구한 억측에 반론을 제기하며 “김정일이 대화를 원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세계가 말하면 그는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인상 깊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노대통령도 칭찬을 많이 들었다면 ‘대못질하겠다’는 표현을 썼을까요? 어쨌든 그를 칭찬하는 사람은 갈수록 적어지고 있습니다. 그게 그를 화나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언론권력이 자신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길을 막아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아래서 언론의 힘도 대통령의 힘과 같이 대단히 상대적입니다. 대통령이 힘이 빠졌다고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언론의 힘은 세어 보이고, 대통령이 인기가 치솟으면 언론은 약해보일 것입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과 언론관계의 속성 같은 것으로 모두 겪어온 일입니다.

한국의 모든 언론이 일시에 나서서 대통령을 칭찬하면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올라갈까요? 일시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곧 “놀고 있네들”이라고 조소할 것입니다. 그게 독재체제와 민주체제의 차이 중 하나일 겁니다.

말은 문화를 결정합니다. 대통령의 언어는 우리 정치문화를 지배한다고 봅니다.

대통령도 비유적으로 말하면 목수입니다. 목수 중에서도 나라의 대들보를 세우거나 보수하는 상목수입니다. 대통령이 쓰는 언어는 연장통의 못과 같습니다. 국민을 잘 소통하게 하고 통합하게 하는 ‘못’이 되었으면 합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계룡시, 국립국악원 ‘세계가 인정한 우리 음악과 춤’ 성료 계룡시, 국립국악원 ‘세계가 인정한 우리 음악과 춤’ 성료계룡시(시장 이응우)는 지난 18일 계룡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세계가 인정한 우리 음악과 춤’ 공연을 성료했다. 이번 공연은 궁중예술에서 민간예술까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작품 공연을 통해 우리문화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냈다는 평을 받았다. ...
  2. 논산 수해복구에 '구슬땀'…피해 큰 곳부터 자원봉사자 투입 논산 수해복구에 '구슬땀'…피해 큰 곳부터 자원봉사자 투입(논산=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지난 10일 중부지방 폭우로 광범위한 피해를 본 충남 논산시가 복구작업에 전념하고 있다.논산시는 12일 각 읍면동 사무소를 중심으로 호우 피해 조사를 실시하면서, 자원봉사 인력을 투입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시는 이날 육...
  3. 2천㎞ 날아온 후티 드론…이스라엘, 6분간 추적하고도 격추 못해 2천㎞ 날아온 후티 드론…이스라엘, 6분간 추적하고도 격추 못해이집트 영공으로 우회해 지중해 방면서 저고도로 진입한 듯(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이스라엘의 심장부 텔아비브를 공격한 예멘 후티 반군의 무인기(드론)가 2천㎞ 넘는 거리를 날아와 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
  4. 백성현 논산시장, “매년 반복되는 상습 침수 피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 시급” 백성현 논산시장, 농림축산식품부에“상습침수구역 농업생산기반시설 개선 및 확충 지원”요청백성현 논산시장, “매년 반복되는 상습 침수 피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 시급” 백성현 논산시장이 농림축산식품부 강형섭 기획조정실장에 “매년 반복되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관내 수리시설을 확충하고 개선하는 것이 최우.
  5. 논산시, 600억원 규모 충청남도 지역균형발전사업 선정 논산시, 600억원 규모 충청남도 지역균형발전사업 선정  논산시(시장 백성현)가 국방군수산업도시 조성 등 민선8기 핵심사업비를 확보하면서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는 충청남도의 ‘제2단계 제2기 지역균형발전사업 공모’에서 3개 사업이 선정되어 총 사업비 600억원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3개 사업은 도 제안사업...
  6. 기고"]선거의 무게 참으로 무겁습니다." "선거의 무게 참으로 무겁습니다.  민주주의는 참으로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민주주의 하면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정치체제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선거에 의한 정치 권력의 교체가 가능한 것을 말합니다.  민주주의는 그 말이 너무나 좋기 때문에 사실 많이 왜곡하여 사용하여 있고 민주적이지 못한 .
  7. " 다산논어"다산 정약용 선생이 논어를 번역하다, 『다산 논어』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813년 완성한 『논어고금주』에 바탕하여 『논어』를 번역, 해설한 것이다. 『논어고금주』는 『논어』에 대한 다산의 주석서로 『논어』를 공자의 원의에 맞게 읽는다는 기획으로 집필되었다. 그 이름이 『논어고금주』인 것은 다산이 이 주석서에서 『논어』의 고주와 금주를 망라하여 좋은 견해...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