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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명절 한가위가 지났습니다. 짧게는 나흘, 길게는 엿새의 긴 연휴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서 서울로 돌아오는 찻길은 거의 만 하루가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너무도 조용한 명절이었습니다. 몇 가지 안타까운 소식들만 제외한다면.
명절이 다가오면 으레 신문 방송이 앞장서서 떠들어대는 말이 있습니다. 소위 ‘명절 증후군’입니다. 차례를 위한 음식장만, 모여드는 가족친지들의 접대와 설거지, 청소 일들을 머리에 떠올리며 부녀자들은 명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고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겁니다.
한가위 하루전날 아내는 고사리를 데치고 있었습니다. 막내며느리인 아내는 형님들과의 합의에 따라 이번 명절엔 나물과 과일 당번이 되었답니다. 둘째는 떡과 전, 첫째는 그 밖의 모든 제물과 제기를 챙기도록 된 모양입니다.
아내가 큰 형님, 작은 형님하고 손윗동서들 얘기를 꺼내면 한동안 얼떨떨해집니다. 우리 형님 얘긴지, 자기네 형님 얘긴지 얼른 분간이 안 가기 때문입니다.
‘이 그릇 올려라, 저 그릇 내려라,’ 지시대로 꼼짝없이 명령을 수행하다가 친구들에게서 주워들은 농담을 꺼냈습니다.
“당신, 여자하고 조폭하고 닮은 점 알아?” “뭐가 닮았대요?” “첫째, 문신을 한다. 둘째, 칼을 잘 쓴다. 셋째, 저희들끼리 ‘형님, 형님’하고 부른다. 넷째, 떼로 몰려다닌다.” “별 싱거운 소리 다 하네. 당신 일 없으면 밤이나 좀 까요.”
공연히 농을 걸다 혹만 하나 더 붙인 꼴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분고분한 남편을 둔 덕인지, 원래 음식 만드는 일을 즐기는 탓인지, 아내는 명절 때면 오히려 신바람을 냅니다. 그런 아내가 가장 거부감을 드러내는 단어가 바로 ‘명절 증후군’입니다. 아예 단정적으로 ‘언론의 호들갑’이 만들어낸 억지 조어라고 비난합니다.
산지사방에 흩어져 살던 부모형제가 모처럼 한 자리에 모여 손수 장만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 그런 큰 즐거움에 비하면 그깟 명절을 준비하는 수고는 수고도 아니라는 게 아내의 주장입니다. 그것도 겨우 한 해 두어 번의 명절인데.
그러고 보면 한가위의 풍속도 참 많이 변했구나 싶습니다. 성묘를 생략하고 해외여행 나가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난다고 합니다. 관광지 호텔방에 차례상을 차리는 것쯤 다반사라고 합니다. 길거리 어디에서도 예전처럼 예쁜 한복차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차피 시속은 변하기 마련인 걸 어찌합니까. 그러나 시집에 먼저 가자, 친정에 먼저 가자, 싸움 끝에 베란다에서 투신자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요. 홀로 기거하던 단칸방에서 마른 송편 넘기다 목이 메어 세상을 뜨는 노인들은 어찌하면 좋을까요.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 명일 쇠어 보세. 햅쌀 술, 오려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며느리 말미 받아 친정집 다녀갈 때 개 잡아 삶아 건져 떡 고리와 술병이라. 초록 장옷, 남빛 치마 차려 입고 다시 보니 농사일에 지친 얼굴 회복이 되었느냐. 중추야 밝은 달에 마음 놓고 놀다 오소.’
오래전 조상들의 팔월 한가위 풍속을 전하는 ‘농가월령가’의 뜻만 옳게 헤아려도 지금의 시비나 혼란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도회에 흩어져 살던 자식들은 어린 아들딸 앞세우고 선물꾸러미 챙겨들고 그리운 고향을 찾았을 것입니다. 아침나절부터 열두 번도 더 바깥을 내다보며 인기척을 기다리던 노부모는 귀여운 손자손녀의 고사리 손 주무르며 장성한 자식들의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을 겁니다. 다시 흩어져가는 자식들 손에 손에 손수 지은 먹을거리 들리고도 오랫동안 아쉬움에 고개 돌리지 못했을 겁니다.
거기에다 내 며느리가 남의 집 귀한 딸이요, 내 딸이 남의 집 소중한 며느리라는 헤아림만 더한다면 ‘명절 증후군’은 자취없이 사라지고, 우리네 명절은 한층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