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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 뉴스관리자
  • 등록 2007-08-21 12: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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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우리가 사는 매일 매일이 늘 같은 날이 아니듯이 일생을 살아 내는 동안 우여곡절의 곡예와 같은 줄타기를 하는 삶이라는 것은 두말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세월이야 무상하다 할 만큼 같은 나날이지만 날마다 주어지는 상황은 다르니까요.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 가운데 “알 수 없는 심연에서 나서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생애에 가장 빛나는 순간이 인생이다” 라는 말을 곱씹어 보면서 나의 삶 가운데 가장 빛나던 순간, 즉 인생이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찰나는 과연 얼마나 될까를 이따금 생각해 봅니다.

젊어서는 목적하는 학교에 붙는 날, 어렵다는 직장에 입사를 한 날, 어여쁜 색시를 만나 결혼을 하는 날, 첫 아이를 안은 날, 순조롭게 승진을 하고 피 말리는 경쟁 끝에 최고의 자리라고 생각한 곳에 이른 날, 그리고 다시 아이를 출가 시키는 날... 꼽아 보면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빛나는 날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주마등같습니다.


제주 화산지역 오름군 (서재철씨 제공)


모든 사람들이 다 나름대로 빛나는 날들을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 하는 전사가 돼 치열한 도전 끝에 때로는 승전보 같은 빛나는 날들을 만들어 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날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유기적인 관계망을 형성하는 근본이 되고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라고 여겨집니다.

비단 빛나는 날은 한 사람의 생애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역사, 한 지역의 총체적 상황에도 잇대어 불가분의 일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허리가 잘린 분단국으로 남았지만 1945년 광복이 그렇고, 국민적 열망으로 들떴던 2002년 월드컵 4 강 등 크고 작은 고비들을 빛나는 날로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배경에는 굴욕과 질곡의 파란만장을 겪어야 한다는 것도 감안을 해야겠지요.

같은 맥락에서 화산섬 제주의 역사는 감내 하기 어려운 시련과 영광의 한 전형입니다. 태생 자체가 화산의 분출로 한 바다에 내동댕이쳐진 숙명의 섬 제주는 2천 5백여 년 전 고, 양, 부 삼성이 탐라국을 세웠다는 전설에 기대어 누대를 잇는 동안 거친 바다에 유배된 무지랭이, 바람 타는 섬일 따름인 천덕꾸러기로 치부 돼 왔습니다.

몽골에 접수 돼 지배를 당한 것만도 백여 년, 왜구의 침탈로 주민들이 굶주림이 극에 달한 시기만 2백여 년, 탐관오리 수탈에 목숨이 초개같았거나 이재수의 난, 4,3 사건의 재앙 등 유린과 치욕의 역사로 점철된 섬이었다는 아픔에 더 토를 달기가 민망 할 정도입니다.

이런 전철을 딛고 환상의 섬, 신비의 섬으로 국제자유도시, 평화의 섬에다 특별자치도로 거듭 날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가 지닌 무한한 생명력이요, 그 생명력을 지탱하는 독특한 풍광과 자연이 수 세기를 걸쳐서도 올곧게 보존 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벽이후 암울하기만 했던 섬이 마침내 빛나는 순간을 맞았습니다. 한라산 백록담, 성산 일출봉, 지하 용암동굴계 일대가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 된 것입니다. 사실상 제주도 섬 전체가 세계의 자연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셈입니다.

제주도가 세계 170여 유네스코 회원국 가운데 지정된 340 세계 명소와 어깨 겨루게 된 날 영국 BBC방송이 생방송 중계 등 세계 매스컴이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비로소 평화의 섬이 청정 이미지와 함께 세계를 향해 나래를 펴는 계기를 맞은 것입니다.

남은 과제는 이 빛나는 순간을 간직하고 아름다운 섬의 원형을 고스란히 대물림 하면서 이 섬을 섬답게 지켜 낸 자랑스러운 역사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결국, 빛나는 순간은 처절하고도 삭일 수 없는 아픔을 벼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때 그 가치의 결과물로 빛이 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간난신고 끝에 얻은 빛나는 순간이 바로 인생이라 할 수 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 한라산 정상에 서성이던 구름 몇 조각이 자연유산의 실체를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치 당신은 당신의 생애에서 빛나는 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되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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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수 : 현재 JIBS(제주방송)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1978년 KBS에 입사한 후 보도본부 문화부차장, 제주총국 보도국장, 제작 부주간, 시사보도팀장을 역임했다.1990년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바람도 휴식이 그리울 것이다’ 등 4권의 시집을 냈고 국제펜클럽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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