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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무슨대통령?
  • 방석순칼럼
  • 등록 2007-07-27 13: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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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허물없이 만나 밥도 먹고 이따금 술도 몇 잔 나누는 여성이 있습니다. 동성 이성을 따지기엔 이미 세월이 너무 지났고, 후배라고 하기엔 지역이건 학교건 겹치는 데가 없고, 굳이 말하자면 인생후배라고나 할까요. 50줄에 든 그녀의 주 관심사는 요리, 그밖에 여행, 등산, 음악감상 정도입니다. 그러니 인생 선후배의 대화도 그 정도가 고작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지난해부터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앉으면 한두 마디쯤 정치 얘기나 우스갯소리를 꺼내고야 맙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초기만 해도 겨우 “젊은 대통령, 멋있잖아요!” 하고 말던 때와는 다른 양상입니다. 어디서 수집해오는지, 그 동안 새 버전이라며 노 대통령을 소재로 한 개그를 옮긴 것만도 십여 가지가 넘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이마에 핏대까지 올리며 열을 냈습니다. 남미를 방문해 전용비행기에서 내려서던 노 대통령이 환영인파를 향해 “알았다. 알았다” 라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언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환영에 대한 만족으로 혼잣말한 것이 마이크를 타고 흐르지 않았을까 추측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 TV를 보면서도 처음엔 너무 놀랐고, 다음엔 너무 창피했고, 한참 후엔 분노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저런 사람이 우리 대통령인가’ 하고 말이지요. “입만 열면 구설이 따르는 대통령인데 이 여자가 유난을 떠는군”하고 말았지만 그날 이후 그녀의 입도 노 대통령과 함께 거칠어져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 그녀의 화제에 심심찮게 오르는 이가 대선주자의 한 사람인 박근혜씨입니다. “행동거지가 저 정도는 되어야죠.” “지금처럼 포퓰리즘이 판치는 때에 저이만큼 일관성있게 주의주장을 펴는 이가 있나요.” 어떤 문제에서든 원리원칙을 내세우는 것도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대한민국에 정말 사나이 같은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추켜세웁니다.

때마침 정부․여당에 대한 끝없는 실망에 힘입어 가만히 앉아서 인기 정당이 되어버린 한나라당의 경선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광주에서 막을 올린 정책토론회에서는 선두주자격인 이명박씨가 ‘7․4․7(경제성장 7%, 국민소득 4만달러, 7대강국 진입)전략’과 ‘대운하프로젝트’를, 추격하는 박근혜씨가 ‘줄․푸․세(세금 인하, 규제 완화, 법질서 확립)를 통한 성장과 안정론’을 내세우며 맞장을 떴습니다.

첫 토론을 보고난 다음 날 점심때의 대화입니다. “귀하는 역시 박근혜 편인가?” “정말 그러네요. 전혀 과장도, 무리도 없었다고 봐요. 어찌 보면 튀는 점이 없어 너무 평범하지만, 그만큼 솔직해서 더 신뢰성이 느껴지네요.” ‘아이고, 이건 완전히 환자 수준이로군.’

“그럼, 예선은 물론 본선서도 박근혜씨는 확실한 한 표를 확보했구먼.” “글쎄요. 그건 아직…여자라는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니,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람.’

그녀는 인간적인 됨됨이, 언행, 신뢰성, 지도력까지도 박근혜씨 편을 들면서 최후의 지지만은 유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능력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연 이런 이율배반적인 사고와 행동이 언론사나 여론조사기관의 통계엔 어떻게 나타날까요.

잇달아 세 개의 실험극이 유럽과 한국, 그리고 미국 땅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테마는 똑같이 ‘여성의 대권 도전’, 주연은 프랑스의 세골렌 루아얄, 한국의 박근혜,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입니다.

여성으로서는 처음 유력 대권 후보로 등장한 세 무대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유사점과 차이점이 흥미롭습니다. 한결같이 여당이 죽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야당의 여성 스타들입니다. 동시에 전혀 다른 이력과 성향을 가졌습니다.

사회당 예선을 통과해 프랑스 대선에 나섰던 루아얄은 육군 대령의 딸입니다. 미테랑 대통령에게 발탁돼 가족장관, 환경장관을 지냈습니다. 가족, 복지, 환경,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중시합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쟁에 나선 박근혜 전 대표는 역대 최고의 지도자, 독재자라는 이중적 평가를 받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흉탄에 잃었고, 자신이 무뢰한의 칼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차떼기당’으로 지탄받아 풍비박산지경이던 한나라당을 구하는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성장과 고용창출이 복지의 근간이라고 말합니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힐러리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입니다. 백악관 안팎에서 저지른 남편의 부적절한 여성관계로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변호사로서, 상원의원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이라크전 종료, 중산층 보호, 미국의 명예회복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5월 첫 실험에서는 루아얄이 완패했습니다. 당선자 세르코지의 성장, 이민통제 정책에 밀린 탓입니다. 그러나 평등의 나라 프랑스에서조차 대선 막바지 “여자의 관심사는 화장과 패션 뿐”이라는 여성비하 분위기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2008년 대선후보 경쟁에서 젊은 흑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맹추격을 받고 있는 힐러리 캠프는 둘을 재미삼아 비교하는 미국내 일부 시각에 펄쩍 뛰며 “여성이라는 사실 외에 루아얄과 힐러리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루아얄은 자신의 매력과 여성다움을 강조했지만 힐러리는 국가안보를 더 중히 여긴다”며 차별화를 서둘렀습니다. 미국에서도 여성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지요.

“남자라면 딱인데…” 12월 대선에 앞서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겨루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가장 큰 약점도 여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평소 그의 언행이 합치되고 남자보다 더 강한 뚝심과 설득력을 가졌다고 평가하면서도 말입니다.

사실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것조차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어느 자료에는 뉴질랜드, 호주 등이 가장 이른 1900년 전후에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고, 영국과 미국 등 다수의 국가들이 1920년 전후에,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은 1945년이 돼서야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다는군요. 그렇다면 오늘날 여성들의 정치 진출은 오히려 과속인 셈인가요.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이미 성의 벽은 허물어지고 오히려 여성의 능력이 우위를 점한 분야도 적지 않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 학기 초 '여초(女超)현상' 완화를 위해 교사임용 때 최대 30%까지를 남성으로 뽑겠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여성 세력의 비약적인 발전과 여권신장 추세를 ‘바야흐로 모계사회로 돌입하는 증좌’라고 말하는 이들도 없지 않습니다.

과연 남성들의 근거없는 여성 비하, 여성들의 자포자기 현상이 사라진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정말 이번 대선에서는 ‘계급장 떼고’가 아니라, ‘성별 구분’을 지우고 대선 주자들을 제대로 한 번 평가해 보았으면 합니다. 카메라의 필터도 빼고, 짙은 색안경도 벗고.

우리는 지난 몇 차례 대선에서 지나고 난 후 돌아보니 너무도 어처구니없었던 야바위판에 휩쓸린 쓰린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은 남녀 성별이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진정한 능력을 갖춘 일꾼인지, 말만 번드르르한 사기꾼인지, 판단해야할 때입니다.

사실 박근혜씨나 힐러리가 가장 바람직한 대통령감이라는 데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능력, 자질 이전에 전 대통령의 딸과 부인이 다시 대통령이 된다는 후진적 느낌 때문입니다. 아들딸이 아버지의 권위를 잇고, 부인이 남편의 뒤를 따르고, 동생이 형의 권좌를 물려받는 나라들의 정치행태가 발전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평등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듯이 또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맺어진 어떤 인연 때문에 부당한 대접을 받아서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모두가 승복하기로 약속한 룰에 따라 이루어지는 공정한 경쟁에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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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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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7-27 13:59:42

    여성도 대통령이 될 수 있지요. 남녀평등 사회에 아직도 성차별이 있음 안되죠.
    중요한 것은 능력이겠죠?
    당적을 바꾸는 일보다 일편단심이 더 낫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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