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선 논산시장에게 드리는 서생의 고언 [苦言]
허씨부인전 [ 許氏婦人 傳] 극화 [劇化]를 제안한다,
조선초기 나이 열일곱된 허씨 부인이 남편과 사별하고 개가를 권유하는 친정 부모의 권유를 뿌리치고 갓난아이를 등에 엎고 친정인 개성에서 걷고 또 걸어서 연산면 고정리 시가에 도착,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아들과 손자들 뒷바라지에 심혈을 기울여 결국 맏손자가 재상의 반열에 오르도록 하는 등 가문을 번성케 하고 끝내는
그 후손 중에 조선조 예학의 종장으로 추앙 받는 사계 김장생 선생이 역사의 한페이지를 점하게 하는 등의 역사적 사실은 아들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씩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에 버금하는 정절의 표상으로 위대한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사표가 되고도 남는다,
특히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허씨 부인이 걸어서 연산에 도착하기 까지 호랑이가 길을 안내 했다는 내용이나 시가에 도착 했으나 시가의 어른들이 선뜻 며느리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자 시가 앞에 움막을 짓고 치성을 드리는 모습에 더해
추운 겨울날 천지에 눈이 소복히 내리는 어느날 허씨부인의 움막 근처에만은 눈이 쌓이지 않고 온기가 감돌았고 훗날 후손들이 허씨 부인이 움막을 짓고 기거 했던 자리에 유허비를 세웠다는 사실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허씨 부인의 고귀한 행적은 널리 알려져 조정에서 정려각을 세우고 정경부인 으로 추증 하는 등 의 내용이 조선역사실록에 실려 있고 삼강행실도 등을 통해 소개 되기도 했다,
또 허씨부인 사후 잠든 연산면 고정리 사계 묘역 일원에는 허씨 부인의 삶의 궤적을 더듬을 수 있는 유적과 유허비 묘비명 등이 남아 부인의 정절과 극진한 효성 그리고 자손들에 대한 자애롭고도 엄중한 교육열 등을 느낄 수 있다,
만일 이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사표가 되고도 남음직한 허씨부인의 일대기를 재미와 의미를 곁들여 영화 또는 공연물로 극화 한다면 모르면 몰라도 기대 이상의 명작 탄생을 예감하는 소이가 거기에 있다,
마침 황명선 논산시장은 남달리 문화분야에 대한 열정이 차고 넘치는 터여서 황명선 시장이 허씨 부인전의 극화 문제를 놓고 평소 교유해온 내노라할 작가그룹과의 협의 한번 해 볼만 한 일이 아닌가 생각 해본다,
논산의 대표적인 사액서원인 돈암서원의 숭례사 사계 감장생 선생과 그 아드님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동촌당 송준길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제향을 드리는 그 사당 담벼락에 좌에서 우로 전서체로 새겨진 열두글자
“지부해함 박문약례 서일화풍 [地負海涵. 博文約禮, 瑞日和風]” 땅이 세상을 짊어지듯 너그럽고 학문을 넓고 깊이 배워 예를 실천하고 서기로운 햇살처럼 넉넉하여라 “ 의 가르침도 실은 허씨 부인이 연산에 정착한 이후 가훈처럼 후손들을 훈육한 가르침의 요약 일것이라는 추론도 있고 보면 도덕이 땅에 떨어진 오늘의 세태에 비추어 허씨부인의 일대기를 극화 하는 일은 매우 보람있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황명선 시장의 깊은 헤아림을 기대해 본다,
굿모닝논산 대표 김용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