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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연산면 연산장터 한복판에 위치한 철물점 간판을 내건 "문화철물" 겉으로 보기엔 우리네 시골살림 일상에 필요한 작고 큰 농기구 들을 비롯한 철물상품들을 취급 하고 있지만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눈이 휘둥그레 진다.
그리 넓지 않은 가게안에 별도로 차려진 대장간..한쪽 벽면의 용광로에선 시뻘건 불길이 내뿜는 가운데 주인 유오랑 [74]님은 연신 달구어진 쇠스랑이며 곡괭이로 만들기 위한 쇠붙이들을 망치로 두들겨 모양새를 잡고 담금질을 거듭한다.
그렇게 우리 전통 방식으로 태어난 쇠스랑 낫 호미 곡괭이 들에 손잡이가 붙여져 제품이 완성되면 부인 이현숙[69]님은 연신 가게안으로 날라 진열대에 가지런히 늘어 놓는다.
우리 논산시 관내에 유일하게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연산 대장간의 역사는 현 주인 유오랑 님의 선친 유영찬 님으로부터 시작된지 100년을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워낙 근면 성실한 선친의 농기구 제작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데다 날이 무디어지고 부러지기거나 한 농기구들은 언제라고 다시 새것처럼 다듬어주는 아프터 써비스 또한 정성스러워서 인근 벌곡 양촌 심지어 먼 대전인근 농촌마을에 까지 그명성이 알려진 연산대장간은 그 당시로서는 가장 인기있는 대장간이었다.
그런 근면성실한 부친의 가업을 현주인 유오랑 님이 이어받은 것은 지난 1974년 근 30년 세월이지만 부친 못잖은 장인정신을 이은 유오랑님의 정직한 솜씨 또한 그 못잖아 대기업들의 기계화된 농기구들의 대량 생산시대에도 불구하고 한번 연산대장간이 만들어내는 농기구를 손에 쥐어 본 농사꾼들은 모양새 미끈한 새 물건들 보다는 유오랑 님의 손맛이 담긴 농기구들을 즐겨 찾곤 한다.
이제 세상나이로 일흔 넷 . 힘든 노동에서 손을 쉴 때도 됐을법 하지만 몸을 놀리는 유오랑님의 움직임은 아직은 스무살 청년 같은 기상이다.
그런 유오랑님도 언젠가는 이일을 그만두어야 할텐데 자신이 대장간일을 그만 두면 대를 이은 가업을 접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있기도 했었지만 뜻박에도 슬하의 삼형제 중 큰아들 성일 씨가 현재 하고 있는 사업과 함께 3대를 잇는 가업 승계를 다짐한 터여서 이제 유오랑님의 시름은 한결 옅어진 터이다.
이제 남은 걱정은 하나.. 그동안 100년을 넘게 한자리에서만 대장간을 열어온 때문에 주택과 상가가 밀집한 시장터에 있는 대장간에 대한 법적인 보존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것으로 유오랑님과 부친에 이어 3대 대장간 대물림 경영을 선언한 유성일 씨도 내심 논산시가 현 연산 대장간이 현업 상태로 유지 할수 있는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눈치다.
한편 입소문을 타고 일부러 연산대장간을 들러 우리 근대의 농경에 필요한 농기구 제작사를 돌아볼 기회를 가진 많은 이들은 우리전통문화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연산대장간에 대한 관계당국의 특단의 지원을 통해 연산대장간이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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