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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미학으로 동양인문학을 꿰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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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3-04-11 17: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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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을 감상하는 데 있어 뿌리 깊은 기초를 이루는 동양사상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 도교와 선종, 역학, 기화철학, 유교, 명가 등 동양을 풍미했던 여러 철학자들의 논의가 섬세하고 풍부하게 다뤄진다. 칸트, 니체 등 서구철학의 미학 개념이 소개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중심은 동양의 인문학 전통이다.

이를테면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를 칸트의 ‘무정’ 개념을 대별시키는 대목을 예로 들 수 있다. 칸트의 ‘무정’이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불확정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면, 동양미학의 ‘불이법문’은 유와 무의 양변을 초월해버린 상태다. 이처럼 저자는 중요한 사상이나 철학의 마디에 이르면 서양사상과의 비교를 놓치는 법이 없다. 주체적인 비교를 통해 동양미학 개념의 특유한 지평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써 저자는 서양미학으로는 말끔하게 설명되지 않는 동양예술의 진경을 펼쳐 보이는 동시에, 주체적인 동양미학을 정초하려는 소중한 발걸음을 디딘다. 독자들은 동양예술 작품에서 더는 피상적 인상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인식의 바탕 아래 깊고 넓은 예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더욱이 저자 주량즈는 베이징대학교의 철학과 교수로서, 이 책 또한 그의 대학 강의를 토대로 밀도 높게 손질되었다. 그런 만큼 강의 형식의 쉽고 친절한 설명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동양예술과 동양사상의 뿌리를 이해하는 입문서로서 손색없다.

이끄는 말|자신과 만물을 하나로 융합하는 생명초월의 미학

1강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의 즐거움
2강 불이법문不二法門
3강 가는 것이 이와 같다
4강 굴원의 여운
5강 기화우주
6강 떨어진 꽃은 말이 없다
7강 영적 공간
8강 사시四時의 바깥
9강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보다
10강 큰 기교는 서투르게 보인다
11강 화엄의 경계
12강 자연의 큰 기운을 들이마신다
13강 현문의 오묘한 깨달음
14강 형신의 사이
15강 ‘정’과 ‘성’을 기르다



● 1강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의 즐거움
장자는 사물과 나를 회통시키는 순수체험의 경계를 ‘물화物化’라 칭한다. 사물로 변화하니 나는 곧 사물로서, 사물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경계가 없다. 물화의 개념은 《장자》〈제물론齊物論〉 편 마지막 부분, 꿈속에서 나비로 변한 이야기에서 나왔다. 물화는 대상화의 상대적 개념으로, 장자는 사람을 대상화 상태로부터 끌어냄으로써 생명이 저절로 드러나게 했다. 장자는 그림자 이야기를 꺼낸다. 자기 그림자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움직이면 그림자가 따라오고 내달려도 그림자가 쫓아왔다. 그는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고 있는 힘을 다해 내달렸지만 실패했고, 도리어 지쳐서 죽고 말았다. 장자가 말했다. 세상 사람은 사실 그림자와 경주하고 있다. 그림자 같은 목표를 쟁취하려 좇아간다. 지식이나 이익, 욕망은 모두 자신을 부대끼게 하고 찔러대는 대상으로, 자신과의 전면적 충돌을 조성한다. 장자는 일찍이 혜자를 이렇게 비평했다. “형체와 그림자가 경주하는구나, 슬프도다!” 장자의 말은 이렇다. “자네는 왜 커다란 나무 밑에 들어가 쉬지 못하는가? 커다란 나무 아래라면 그림자가 없어지지 않는가” ‘커다란 나무 아래’란 다름 아닌 자연의 온전한 물화세계다. 물화세계에서는 자연 속에서 만물이 하나가 되어 충돌도 없고 이것과 저것의 구별도 없으며,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구별도 사라진다._23쪽

장자가 말한 큰 온전함의 아름다움은 미의 기본 특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이것은 중국미학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 “마음이 천지와 더불어 갖추어지니, 어찌 몸의 유무를 알겠는가” 사람이 세계 속으로 녹아 들어가면, 즉 혼돈의 세계로 진입하면 “혼돈 속에서 광명을 방출한다.” 장자의 관점은 중국인의 미관에 영향을 미쳐 과학적 분석이나 공리적 목적에는 ‘미’가 수반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또 ‘미’는 외재적 인식에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 생명의 체험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인식의 창을 닫아걸고(일곱 구멍이 통하지 않음) 생명체험의 문을 여는 것이다. ‘미’는 감성적 경험에서 오지 않으며, 심지어 감성적 경험을 배제하기까지 한다. 혼돈의 미는 흐리멍덩하거나 마구 뒤섞인 것이 아니라 밝고 또렷하게 생명을 파악하는 것이다. 혼돈의 미는 모호한 미학이 아니라 생명의 발현이다. 장자가 말하는 혼돈의 미, 크게 온전한 미는 세계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아름다움이다. 여기서 우리는 장자의 관점이 감성에 토대를 둔 서양미학과 근본적으로 다름을 알 수 있다. 도가철학이
유행하고 선종禪宗이 다시 도가철학에 자극을 줌으로써 초월과 체험을 중시하는 중국미학의 전통이 강화되었다._39쪽

- 알라딘
● 2강 불이법문不二法門
중국미학은 당대 이후에 이르러 하나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는데 심미관에 큰 변화가 일어나며, 미학이론에도 많은 새로운 특징이 나타난다. 총체적인 경향으로 말하자면 텅 비어 담담한 경계를 추구했고, 오래되고 서투르며 무성하고 우거진 기상을 중시했으며, 쓸쓸하고 황량한 의미를 높이 샀다. 고요함과 깨끗함으로 거침과 광대함을 대체했고, 평화와 그윽함으로 격앙과 괴로움을 대체했으며, 담담함과 소박함으로 현란함과 웅대함을 대체했다. 이론상으로는 경계를 중시해 오묘함을 강조했고, 기교적인 측면을 폄하하고 배척했다. 이는 모두 당시의 심미적 변화의 표출이었다. 당나라 중엽 이후 중국미학과 예술에 현저한 변화가 생긴 것은 근본적으로 철학적 영향 때문이었다. 또한 불교의 전래는 중국사상사에서 하나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한나라 말엽에 시작된 불경 번역 사업은 위진 시기를 거쳐 수ㆍ당나라에 까지 이르면서 중국불교를 크게 번성하게 했다. 삼론종ㆍ법상종ㆍ천태종ㆍ선종 등 불교 학파가 생겨 맥을 이었고, 그중에서도 선종(특히 남종선)은 중국의 도가와 인도 대승불교를 새롭게 결합함으로써 “가장 절실하고, 가장 미묘했는데”, 이런 사고는 원래부터 미학적 가치를 구비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단도직입單刀直入이나 불립문자不立文字, 차가운지 따뜻한지는 마셔보면 절로 안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이전의 심미관이나 예술관에 충격을 던졌다. 선종이 중국미학과 예술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이다._54쪽

하루는 여러 보살이 같이 앉아 도를 논하는 자리에서 유마힐이 물었다. “불이법문이 무엇인지요” 32명의 보살이 각각 자신이 이해한 불이법문에 대해 말했다. 대답의 내용에는 분별지를 초월한 부분이 약간 포함되어 있었다. 여러 보살이 모두 말하자 유마힐이 문수에게 대답을 청했다. 문수가 대답했다. “일체의 법에는 언설이 없으니, 둘이 아니라 말하면 이미 둘입니다. 선생님께서 저희들을 위해 어떤 것이 진정한 불이법문인지 알려주십시오.” 그러자 유마 대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유명한 유마의 침묵이다._56쪽
- 알라딘
● 3강 가는 것이 이와 같다
중국철학과 미학에서 옛것을 새것으로 삼는 관점은 사실 심령이 드러낸 현실이다. 중국미학은 특히 옛것 속에서 새것을 추구하고자 한다. 절대적인 옛것도 없고 절대적인 새것도 없다. 새로움은 생명이 체험한 새로움으로, 체험 속 경계다. 새로움은 외재적 표상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심령이 생명을 대하면서 드러난 것이다. 이 점은 미학에서 그 의미가 무척 크다. 〈이십사시품〉에는 “섬농”이라는 품이 있는데, 그중 이런 구절이 있다. “타고서 나아갈수록, 아는 것이 더욱 진실해진다. 만약 다하지 못함이 있으면, 옛것과 더불어 새롭게 된다.” 그 의미는 이렇다. 만약 이 창조의 세계로 녹아 들어간다면 그 진정한 경계를 알 수 있다. 항상 보는 새로움은 비록 보통의 모습으로 옛것이 끝나고 나서 보이는 것이지만, 눈과 마음이 합쳐진 것이므로 신선하고 영통하다. 새로움은 심령으로 체험하는 사실이다. 아름다운 심령 속에서는 도처가 새로우니, 옛것이 곧 새것이다. 아름다움의 창조에는 중복된 것이 없어 심령이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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