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태사는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뒤에 산세가 좋은 높은 천호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개태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호국종찰 천호산 개태사 > 를 새긴 입석이 개태사에 참배하러 오는 불자를 맞이하는 듯하다.
개태사는 서기936년 고려 태조왕건이 천호산 아래 황산벌에서 치열한 전쟁 끝에 후백제를 정벌하여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후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기념으로 창건된 사찰로 4년여의 대역사끝에 완성된 절이다.
개태사는 천년 역사의 수많은 파란을 겪으면서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다시 출발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의 영정이 봉안되어 ‘진전(眞殿)'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나라의 제사를 주관하고 국가대사에 대한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찰이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왜구의 침입을 받으면서 방화·약탈되되면서 폐허가 되었다. 1934년 여승 김광영(金光營)이 개태사지에 매몰되었던 삼존석불을 찾아내 세우고 현재의 자리에 절을 짓고 개태도광사(開泰道光寺)라 부르기도 했으나 최근에 다시 개태사라 하였다.
극락대웅전 앞 마당에 세운 5층석탑은 화강암을 웅장하고 정교하게 깎아 세워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 극락대웅전은 중창복원 불사를 하였으나 개태사를 찾았을 때는 출입문을 봉하고 참배를 금하고 있었다 .
개태사에 민속자료1호로 철확이 있다. 철확은 고려태조왕건이 개국사찰로 세운 개태사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커다란 철제솥이다.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이며, 절의 전성시에 장(醬)을 끓이는 그릇으로 사용하였다. 창건 당시 주방에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철확을 보면 창건 당시 절이 얼마나 융성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부귀영화의 허망함에 다시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