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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돈은 웃정일까?
  • 뉴스관리자
  • 등록 2009-03-24 11: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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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호주로 이민짐이 막 도착한 집들 중에는 짐 나르는 인부들에게 새참이나 점심을 어떻게 해 줘야 하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이삿짐이건, 집안 공사건, 잔디 깎는 일이건 점심이나 참은 물론이고 마실 물까지 본인들이 전부 갖고 다니니 일을 맡긴 쪽에서 더 신경 쓸 것도 없고 그저 계약한 대로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면 한결같이 마음을 가볍게 가집니다.

이사야 포장 이사로 하면 일하는 사람들 마주칠 일 적게 간편히 끝낼 수 있지만 어디 한 군데 집안 공사라도 하게 되면 음식을 배달시키는 것 말고도 때가 돼서 밥 해주는 집이 한국에는 아직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일 벌이느라 여기저기 어수선하고 가재도구 같은 것이 임시 자리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만도 심란한데 일꾼들 점심이나 새참을 해낸다는 게 생각만해도 번거롭던 차에 호주에서는 아예 그런 인심이 없다는 말이 반갑게 들렸던 모양입니다.

도로변이나 아파트 공사장에서 불도저나 포크레인을 몰며 일하는 인부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공사차마다 큼지막한 도시락용 아이스 박스가 동여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날마다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옆구리에 끼고 있는 ‘대형 도시락’인들 온전할 리 없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몸체도 여기저기 찍혀 있습니다. 게다가 공사차가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양새가 인부들의 고단한 삶을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아 안쓰럽습니다.
집 일을 하는 사람도 마실 물까지 가지고 다니는 판이니 공공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 철저하게 자기 것을 챙겨야 하겠지만, 폭염 아래 온종일 차에 묶여 시달린 아이스 박스인지라 더위에 지친 주인에게 시원한 물인들 제대로 제공할 수 있을지 미심쩍습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삯으로 주고 받는 것 외에 마음씀도 얼마간은 따라줘야 사람 도리인 경우가 있고, 아무리 돈으로 쳐 준다 해도 나 대신 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 있습니다.
무거운 이삿짐을 나르거나 땡볕에서 잔디를 깎는 사람이 밖에 있는데 나만 실내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앉았기에는 지불하는 대가에 관계없이 마음이 편치 않아 얼음 띄운 냉수 한 잔이라도 권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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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년 전, ‘계약관계’로 움직이는 호주의 생활 일면을 우리 잣대로 재어 썼던 <우리 인심이 한결 윗길> 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카펫 스팀 클리닝을 맡긴 날,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한 사람에게 음료수 한 잔을 권하면서 품었던 단상인데, 오래 전에 쓴 글이니 지금은 한국 상황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음료수 한 잔이 무슨 분에 넘치는 대접이라도 된다고 감동까지 하는 걸 보고 계약보다는 인정을 우선으로 놓는 우리 마음자리가 한결 윗길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일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한 달 전에 집안의 해충 소독을 하면서였습니다.

젊은 사람이 어찌나 꼼꼼하고 세심하게 일을 하는지 원래 정한 금액에서 작으나마 웃돈을 좀 얹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계약’에 익숙해진 지 오래라 지폐 한 장을 더 보탤까 말까를 두고 호주머니 속에서 만지작 만지작 돈을 세면서 갈등했습니다.

‘어차피 받을 만큼 부르지 않았겠나. 그렇다면 웃돈까지 얹어줄 필요가 있을까. 아니지, 같은 돈 주고도 사람을 잘못 만났다면 저렇게 꼼꼼하게 해줄 거라는 법도 없잖아. 그러니 너무 인색하게 굴어선 안되겠지?’

소액 지폐 한 장을 더 얹어주냐 마냐를 가지고 오만가지 갈등에 실로 만감까지 교차했지만 저라는 인간이 원체 ‘쪼잔하니’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10년 전 ‘음료수 한 잔의 감동’을 되새기며 결국 ‘한 장’을 더 주는 것으로 마음 속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무슨 돌발 상황이란 말입니까.
뜻밖에도 그 젊은이는 고마운 마음만 받겠다며 기어코 제 호의를 거절하는 게 아닙니까. 상황은 역전되어 제가 오히려 "가다가 음료수라도 사 먹으라"며 통사정(?)을 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는 운전석 옆자리에 놓여있는 ‘예의 ‘ 아이스박스를 가리키며 물이며 음료수, 점심까지 이 속에 다 들어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까.

그 젊은이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닌 한국 교민이었으니 고마워서 돈을 더 주고 싶은 제 마음과 우리네 인심을 이해 못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웃돈을 한사코 사양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계약보다 인심이 윗길이라면 인심보다 앞서는 것은 ‘프로정신’ 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 날 저는 조금 더 베풀고 양보했을 때 찾아오는 만족감과는 또 다른 차원의 기분좋음, 명쾌하고 시원시원스럽고 세련된 모습, 즉 사전에 적힌 의미 그대로의 '삼박함'을 모처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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