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인 은지는 오늘도 공부가 끝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끝났어."
때로는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걸 때도 있다.
"엄마, 글쓰기방 도착했어."
학교에서 수업을 마쳤을 때도 전화를 하고 보습학원을 마쳤을 때도 전화를 했을 것이다.
은지가 학교에서 집에까지 가는 코스는 대체로 이렇다.
학교 → 보습학원 → 우리 집(독서와 글쓰기)
가끔은 보습학원에 안 가는 날이 있고 우리 집 역시 1주일에 두 번, 정해진 날만 오기 때문에 특별히 엄마가 신경써야 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꼬박꼬박 자신의 행보를 보고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집이 먼 것도 아니다. 은지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아이들 걸음으로 8분 정도이고, 은지가 다니는 학원은 모두 등하교 길목에 있다.
그렇다고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임의대로 학원 수업에 결석하지도 않는다.
은지는 시계다. 단 한 번도 한 눈을 팔지도 않거니와 지각을 하거나 수업에 빠진 적도 없다. 그런데도 은지 엄마는 은지의 모든 스케줄을 일일이 체크하는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학교 앞에 기다리고 서 있다 은지를 학원에 데려다 줬었다. 은지의 마지막 스케줄인 우리집 수업이 끝났다고 하면 또 마중을 왔다.
곁에서 보는 사람은 답답하지만 은지는 엄마가 그러는 게 전혀 이상하지가 않은 모양이다. 익숙한 일상이 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불만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엄마가 모든 것을 통제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친구를 사귈 수가 없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데 그 또한 그러겠거니, 한다.
"하기 싫다" "가기 싫다"고 하면 무조건 학원을 끊어주거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과외교사를 바꿔주는 엄마도 있다.
특별히 교사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아이가 공부하는 게 싫어서라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참고 견뎌보라'고 하지 않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다. 그런 아이에겐 "참고 견뎌라"라는 말은 고전이다. 굳이 불편을 감내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말만 하면 엄마가 모두 수용하는데 싫은 걸 왜 억지로 참겠는가.
꼭 밥을 사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도 드나드는 식당이 있다. 식당 주인과 원래부터 친해서가 아니라 다니다 보니 가까워져 오가는 길에 들러 차를 얻어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녀는 몇 년 전, 남편과 사별한 다음 혼자서 식당을 운영하며 두 아들을 키우느라 애로가 많다.
어느 날, 그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들어왔다. 그녀는 아들을 외따로 데리고 가 자리를 잡았는데 금세 큰소리가 났다.
"다른 애들은 다 50만원짜리 점퍼를 입는단 말이야. 난 겨우 35만원짜리 입겠다고 하잖아? 그런데도 못 사줘?"
아들은 상소리를 섞어가며 엄마를 압박했고 엄마는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살피느라 전전긍긍했다. 남들 보기 부
끄러워서였는지, 아니면 어차피 아들의 의지를 꺾을 자신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아들을 더 설득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금방 아들의 뜻을 수용했다. 아들은 자신의 뜻을 이루긴 했지만 엄마가 기분좋게 사주겠다고 하지 않아서인지 울뚝불뚝한 얼굴로 식당을 나갔다.
아들이 나간 다음 그녀가 장탄식을 한다.
"제가 잘못 키워서 그래요. 어릴 때부터 해달라는 걸 다 해줬거든요. 지금은 식당 장사도 잘 안 되고 월세
도 몇 달째 못내고 있는데 아무리 어렵다고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데요."
막무가내면 되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