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도피의 이상
/ 架 痕 김철현
너와 단둘이만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그곳에 가서
너와 나 발을 묻고 천 년을 하루같이
살아갈 수 있는 그곳으로 우리 함께 가자.
그곳에서 우리가 왜 혼자 살 수 없고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또 다른 세상 이야기들을 하자.
그러나 고민해야 할만큼은 하지 말고
언제든지 접어 두고 화두를 바꿀 수 있을 만큼만 하자.
그렇게 이야기에 빠져 눈 내리는 줄도 모르다가
문을 열어젖혔을 때 하얀 눈이 쌓인 마당이
그림같이 펼쳐지면 우리도 마음 하얀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함께 춤을 추자.
속옷까지 다 젖도록…….
물먹은 장작으로 군불 지핀 아랫목에 널어놓은 옷
다 마르도록 깨 벗고도 부끄러움 없는 날로 가자.
손으로 쭉쭉 찢은 김치 한 가닥 숟가락에 걸쳐주어
미어질 듯 부푼 볼을 마주보며 아름다운 그날로
바람 드는 문틈에는 문풍지를 바르고
눈이 내리면 우리가 다닐 만큼 쪽 길만 내고
굴뚝에 새하얀 연기가 보일락말락 솟아나도록
사람 사는 곳인 줄만 알리면서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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