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풍진 다 뒤집어쓰고 살아온 나이. 헤아려보니 쉰을 훨씬 넘겼다.마음으로야 언제나 청춘이거니 세월을 잊고산다 강변하지만 귀 밑머리 희어지고 골 깊은 얼굴 주름이야 어찌 감출 수 있으려는가..
어느 날인가 휴가라며 불쑥 찾아온 큰아들 녀석이 불쑥“ 저 장가 가겠습니다”한다.돌아보니 있은 듯 없는 듯 저절로 커준 것 같은 큰 아들 녀석 나이도 벌써 서른이다,
그렇게 시작된 혼담 끝에 맞게 된 며느리 될 아이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은 깊고도 그윽하다.
30여년 못난 지아비 만나 우여곡절 천신만고 견뎌낸 뒤의 첫 며느리 들이는 일이니 만감이 교차하는 가보다.언제였던가..
공주대학을 다니던 아들 녀석이 토요일이라 집에 들렀다.늘 그래 온 것처럼 아비에게 큰 절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녀석의 발그림자가 유난히 짙다.
발자욱을 옮기는 대로 시커멓게 묻어나는 진 흟 부스러기... 거실이고 안방이고 엉망이다.무심코 내뱉었다. “인석아. 발이 왜 그래? 왜 그리 더러운 거야..
” 큰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들 녀석의 대구가 없자 다시 힐책했다. “”왜 그런 거야?“ 한참을 침묵하던 아이가 그제야 조그만 목소리로 대구했다.
“신발에 문제가 생겼나 봐요” 그리곤 제방으로 들어가 버렸다.모처럼 친구들과 만나 거나하게 술을 들이 킨 뒤라 곯아떨어진 끝에 잠에서 깨어난 새벽녘.. 이런저런 상념에 뒤척이고 있는 중에 아들아이가 내뱉듯 던진 말이 뇌리에 떠오른다.
“신발에 문제가 생겨 서요” 문득 아들 녀석 신발로 눈길이 향했다.가만히 신발을 들어 살펴보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겉은 멀쩡한데 바닥은 엄지손가락이 들 낙 거릴 만큼의 구멍이 나있다.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렸다. 핑하니 눈에 눈물이 솟구친다.
이거 였던가 .. 엊저녁 아들 녀석이 말하던 신발에 문제가 생겼다는게....비가 질척거리는 날 구멍이 난 구두를 신고 오다보니 빗물에 젖엊던게다.부끄러웠다
하릴없이 정치권 주변을 맴돈 끝에 명색이 시의원에 당선됐다지만 아들아이 구두 한 컬레를 사주지 못했던 거고. 아들 녀석은 여유라곤 없어 보이는 아비에게 신발 사달라는 말을 건네지 못했던 것 일게다..
먼동이 터오면 잠에서 깨어날 아들아이 얼굴 볼 면목이 서지 않을 것 같다. 벗어 뒀던 상의 주머니를 뒤져보니 시의회 회기수당으로 받은 만원권 몆 장이 남아있었다.
오만원을 봉투에 넣었다. 그리곤 “아들아 미안하구나 사랑한다” 쪽지와 함께 아들 녀석의 헌 구두에 넣었다
.그리고 도망치듯 집을 나선 아침거리에서 맛본 그날의 참담함은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듯 헤아림이 깊은 아이가 이제 어엿한 모습으로 가정을 꾸리겠다니 어느 아비인들 가슴이 뭉클하지 않겠는가...
잘살아줬으면 참 좋겠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의 당당한 성취도 이뤄줬으면 좋겠다.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줬으면 좋겠다.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이웃들의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기억되는 그런 오지랖 넓은 사람이었음 더 좋겠다..
아들아 사랑한다...그리고 네 중학시절에 건네줬던 나옹선사의 시구 한 구절을 다시 또 너에게 전한다...
靑山兮要我 [청산혜요아]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굿모닝논산 대표 김용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