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도 일본 〈NHK〉 취재반이 쓴 <김대중 자서전>이 있었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회고한 <나의 삶 나의 길> <행동하는 양심으로> 같은 책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의 기록은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을 진실하게 기록하여 역사와 후손에게 바치”고 싶었던 마음대로 서거 1주년을 맞아 두 권짜리 <김대중 자서전>(도서출판 삼인)으로 돌아왔다. 대통령직 퇴임 뒤인 2004년부터 자서전을 구상했고 2006년 7월부터 모두 41차례에 걸쳐 구술한 것을 모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남북관계와 민주주의 후퇴를 염려하던 그는 자서전에서도 이 분야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 특히 역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대통령답게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남북관계 후퇴에 ‘통탄’
“적어도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남과 북이 다시 가난해지지 말아야 한다. 통일은 나중에 하더라도 끊어진 허리를 이어 한반도에 피가 돌게 해야 한다.”
아직도 ‘퍼주기’ 논란이 지속되는 대북 지원 문제에 대해선 “남쪽이 잘살면 도와줘야 한다. 동생네가 끼니를 잇지 못하면 형이 쌀을 퍼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썼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 구상을 “냉전적 사고방식이며 동족에게 굴욕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한 건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읽힌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공동선언문을 작성하기 직전의 상황도 생생하게 회고했다. 김 위원장은 선언문 서명자를 “김대중 대통령을 대표해서 임동원, 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표해서 김용순, 이렇게 합시다”라고 요구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일 처리를 좀 시원하게 해주십시오”라며 김대중·김정일 두 사람의 이름으로 내자고 설득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이 “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라 그런지 무척 집요하군요”라며 농담을 던졌고, 김 전 대통령도 “김 위원장도 전라도 전주 김씨 아니오. 그렇게 합의합시다”라고 맞받았다. 다시 김 위원장이 “아예 개선장군 칭호를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라며 김 전 대통령을 떠봤다.
김 전 대통령이 “개선장군 좀 시켜주면 어떻습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덕 좀 봅시다”라고 다시 농담을 하자 그제야 김 위원장은 웃으며 김 전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