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연순 정보관 제례 진행맡아 눈길. 일부주민들 궐리사 옆 관습상 도로 막는다 돌경계석 파내며 항의. 인근 주민은 궐리사 소유 토지에 지은집 철거 통보 부당하다 유인물 돌리며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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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儒敎]의 조종[祖宗]인 공자[孔子]의 영정과 공자상[孔子像]을 모신 노성궐리사 춘향제가 4월 17일 오전 11시 임성규 논산시장이 초헌관을 맡아 집례하는 가운데 거행됐다.
이날 춘향제는 공자의 후손과 전국각지의 유림대표 를 비롯해 양철야 궐리사 제장 김명규 논산시유림협의회 회장 및 지역유림 1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고 아헌관에는 지역유림인사인 김경중 옹이 .종헌관은 공자의 후손인 공승석 선생이 맡아 집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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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리사闕里司]는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影堂)으로 공자(孔子)가 출생하고 자란 향리 궐리촌(闕里村)을 본떠 지은 이름이며 궐리사 앞마당에 공자상을 중심으로 맹자 .안자 . 증자 .자사 등 오성[五聖]의 석상을 건립, 전국각지에서 유림들의 참배가 그치지 않고 있는 논산시의 대표적인 유교유적이다,
이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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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숙종 13년(1687) 우암(尤庵) 송시열 선생이 궐리사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2년 뒤 세상을 떠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가 권상하, 김만준, 이건명 등의 제자가 현 위치에서 서쪽방향으로 있는 노성산 아래에 궐리사를 세우고 이듬해(1717) 공자영정(孔子影幀)을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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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5년(1791)에는 송조5현(宋朝五賢)의 영정을 봉안하였고 순조 5년(1805) 관찰사(觀察使) 박윤수(朴崙壽) 등이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는 중건 당시 규모가 축소된 것으로, 일명 춘추사(春秋祠)라고도 한다. 궐리사는 강릉(江陵), 제천(堤川), 화성(華城)에도 있었으나 현재는 이곳과 화성에만 남아 있으며 유림에서는 선인들을 높이 받들고 가르침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모여 석전(釋典)을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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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궐리사 춘향제에는 논산경찰서 정보관 이연순 경사가 제례의 향로를 받들어 모시는 역을 담임 하는 등 제례진행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한편 춘향제가 진행되는 동안 인근 마을 이장 반장 등 10여명의 주민들이 궐리사 관계자들이 궐리사 소유라는 이유만으로 궐리사 오른편 산등성이로 오르는 관습상 의 도로를 차량이 통행하지 못하도록 석조 장애물을 설치한 것은 부당하다며 이를 뽑아내는 등 작은 소란이 있었고 궐리사의 아랫편의 주택에 거주하는 양모[여][씨가 궐리사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자신의 집을 철거하라는 통보를 받은데 항의의 뜻을 담은 유인물을 살포 물의를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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